“혹시 대표님 저 좋아하세요?” “네, 좋아합니다.” “왜, 왜요?” “예쁘잖습니까, 귀엽고.” 전혀 순진하지 않은 남자가 순진한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래, 뭐. 예쁜 건 인정. 어제보단 오늘이 좀 더 예쁘고, 망할 연애는 물 건너간 지 오래지만, 괜찮은 외모라는 건 부인하지 않았다. 속 뻔히 보이는데 아니라며 도리질 치는 가식 따위 딱 질색이었다. 아니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설마 나하고 연애라도 하겠다고? 서울 시내 큰 손들이 딸, 손녀 못 갖다 바쳐 안달하는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재벌 회장님들이 골프를 핑계로 어떻게든 사위 삼으려 덤비는 그 최무한이 나랑? 날카롭고도 현실적인 가희의 눈이 대표가 걸치고 있는 것들을 재빨리 훑었다. 300프로에 달하는 수익을 안겨다 주자 눈이 완전히 돌아버린 인간이 들이밀고 간 저 슈트는 세계에서 제일 희귀한 직물 6개로 만든, 영국 왕족이 입는다는 그 브랜드였다. 손목에 찬 시계 역시 어느 회장님께서 선물한 서울 시내 아파트 한 채 값보다 비싸다는 명품 중의 명품. 그러니까, 원룸 반전세를 뺀 그녀의 여유 자금으로는 저 구두 한 켤레 살까 말까 한데, 그런 한가희가 최무한. 저 무시무시한 남자와 만난다? 모르긴 몰라도 분개한 어느 다혈질 투자자의 손에 암살당하거나 그를 흠모하는 수많은 여자의 눈총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근데 그걸 내가 왜 해? 인생 모토를 용 꼬리가 되기보다 뱀 머리가 되겠다로 정한 이유가 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는 싫습니다. 그냥, 부담 없는 사람이......” “그럼 부담 없는 관계 하죠.” “네?” “할 일도 없는데 왜 자꾸 따로 남기는지 몰라, 한가희? 지금까지는 몰랐어도 이젠 확실히 알 텐데?” “저는 전혀......” “부담스러운 관계가 싫다니 부담 없이 파트너 하자고.” 파트너라는 말에 와락 구겨진 가희의 얼굴 위로 닿을 듯 말 듯 남자의 손길이 스쳤다. 보통 때의 그녀라면 경기하듯 놀라야 정상인데, 어이없게도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양심에 손을 얹고 나랑 자고 다는 생각 한 번도 한 적 없어? 그런 거면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소하던가.” 책상을 돌아 그녀에게로 다가오는 남자의 중심이 모를 수 없게 부풀어 있었다. 꿀꺽,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킨 가희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뻔뻔함은 전염되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사의 거기를 이렇게 대놓고 볼 수는 없는 거였다! 하. 고. 싶. 다. 격. 하. 게! 딴생각 하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커다랗게 발기한 단어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아래가 어느새 축축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