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의 사랑

· 에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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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막색소변성증입니다. 조만간 실명하실 겁니다.” “선생님. 이 병 혹시 유전병인가요?”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절 세상은 내게서 빛을 앗아 갔다. 어둠만이 가득할 내 세상에 그를 끌어 들일 수가 없어, 다시는 나라는 존재를 기억하고 싶지도 않게 그가 믿고 있는 사랑을 철저히 짓밟아주었다. “그만 만나자고 지겹다구. 나 남자 생겼어. 그러니까. 우리 그만 헤어져.” 그렇게 버리고 떠난 채훈이 다시 흐릿한 눈앞에 있었다. * 그때였다. 수정이 손을 뻗어 온 것은. 마치 눈이 보이는 것처럼 순식간에 채훈의 목덜미를 휘감더니 그대로 제 입술 위로 채훈의 입술을 겹쳤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입맞춤이었지만, 그도 잠시 채훈은 수정과 깊고 깊은 키스를 나눴다. 알코올 때문인지 입 속은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고 알싸함은 그 기분을 배가 되게 만들었다. “사랑해요.” 잠시 떨어진 입술 사이로 들려오는 수정의 고백에 채훈의 심장은 가열치게 뛰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수정을 바라보면 수정이 다시 한 번 채훈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너무너무 그리웠어요. 그거 알아요?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그래서 좋은 것도 있었다는 거.” 수정은 잠시 말을 잊지 못했고, 채훈은 수정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게 뭔데?” 수정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어느새 수정을 감싸 안은 채훈의 품속에서도 수정의 눈은 채훈을 향해 있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던 세상이었지만 단 한 사람은 잃어버린 빛 대신 언제나 내 눈앞에 선명했으니까.”

About the author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서로 이웃 혹은 이웃한정으로 오래 전부터 공개하던 글을 처음으로 공개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상상하고 그걸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며 평생 글쟁이로 남고 싶은 꿈을 가진 평범한 여자랍니다. 출간작 [그녀 혹은 그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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