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시집 말미에 덧붙인 「시인의 말」을 통해 시 형식에 대한 지론을 담담하면서도 명징하게 밝힌다. “시의 형식은 움직임의 질서”이며, “그 내적 필연성에 따라 상호 의존적으로 시를 구체화한다.” 따라서 “시인이 형식으로 고르고 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어가 형식으로 고르고 시는 써지”는 것이다. 김명인 시인이 10행으로 완성한 이 시집의 시편들은 지나치게 길어지고 산문화되고 있는 작금의 시와는 차별된 지점에서 시인만의 단정한 서정을 보여 준다.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가 고수하는 이 짧은 형식은 모종의 규범을 선포하기 위해서, 혹은 어떤 시적 시도로의 강박 때문에 시인에게서 선택된 것이 아니다. 내적인 필연성에 의해 시어가 끌어당겨 입은 옷이고 거죽이며 꽃잎이다. 김명인의 시는 15년의 준비 끝에 자연스럽고 알맞은 형식으로 개화한다. 독자들은 빠르고 긴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주저앉아, 시의 꽃그늘이 풍기는 봄의 기운에 흠뻑 빠져도 좋겠다.
1946년 경북 울진군에서 태어나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출항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東豆川』 『머나먼 곳 스와니』 『물 건너는 사람』 『푸른 강아지와 놀다』 『바닷가의 장례』 『길의 침묵』 『바다의 아코디언』 『파문』 『꽃차례』와 시선집 『따뜻한 적막』 『아버지의 고기잡이』, 산문집 『소금바다로 가다』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