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 그룹이 부도 위기에 처하자 혜성 그룹에서 제대로 된 며느리 취급도 받지 못하던 하림은 자존심을 지키고자 남편인 수혁과의 이혼을 선택한다. 그러나 수혁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고, 예상치 못한 임신 소식에 오히려 아이가 하림을 잡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신혼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하림의 말에 수혁은 자신을 이용하라는 달콤한 제안을 하는데…. *** “당신은 내 아내고, 당신의 뱃속엔 내 피를 이어받은 아이까지 있어. 그래도 우리가 그냥 계약 관계야?” “… 취했어, 수혁 씨.” “가온을 살리고 싶으면 내 말부터 들어, 장하림. 내가 누구야?” 윽박지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 와중에 더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던지 하림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뒤로 뺐다. 그러자 수혁은 눈을 부릅뜬 채로 한 글자씩 악센트를 주며 다시 한번 물었다. “내가 누구냐고.” “오늘 정말 왜 그래.” “가온 일이라면 날 이용하라고 했잖아. 그런데도 당신 앞에 서있는 내가 아니라 다른 곳에 신경 쓰는 이유가 뭐야?” “나중에 얘기하자, 수혁 씨. 나 오늘 너무 힘들어. 좀 쉬고 싶어.” 하림이 대화를 피하자 수혁은 ‘허-’ 하는 탄식 섞인 소리를 내고는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맞췄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보고 있자니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에 차올랐다. “내가 당신 남편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싫어?” 계속되는 실랑이에 지쳤던지 하림은 말없이 수혁을 노려보았다. 그래봐야 차가운 눈빛이었으나 그제야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는 검은 눈동자가 마음에 들었던지 그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기억해, 장하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윽고 수혁의 입술이 하림의 붉은 입술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