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샤워 중이었다. 어른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빠끔히 열려 있는 욕실 문 틈 사이로 흥얼거리는 그녀의 콧소리가 들렸다. - 흐흐, 이제 어쩐다? 그랬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서둘지 않을 수 없는 영규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광고 카피도 있듯 아무 생각 없이 욕실로 뛰어들어 완력으로 덮치고 보느냐, 아니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덮치느냐를 놓고 나름의 갈등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유리알이 쟁반 위를 도르르 구르는 듯한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 찾은 거야? 자기야, 그냥 가지 말고 잠깐 기다려! 지금 바로 나갈 테니. 알았지? 그냥 가면 안 돼.」 - 안 돼! 나오게 해서는 안 돼! 나를 보는 순간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는 일이야. 막아야 돼! 그 와중에도 영규의 머리는 현명이라 해도 좋고, 지혜라고 해도 좋을 기가 막힌 묘책을 놓고 팽이처럼 빙그르르 회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 그래! 이럴 때는 정공법밖에 없어! 결국 그 방법 밖에 없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기 무섭게 겉옷과 속옷을 매미 허물 벗듯 후다닥 벗어던지며 욕실 쪽으로 몸을 던지다시피 한 영규는 욕실 문 바로 옆에 부착되어 있는 전기 스위치를 내려버렸다. 「어머! 자기야, 불은 왜 끄고 그래? 장난치지 말고 어서 불 켜! 나 무섭단 말이야-! 어서 불 켜!」 동석이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있는 그녀는 비음 섞인 목소리로 애교를 떨어댔다. 그때 영규는 욕실 바로 앞에 서서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었다. 「자기야, 왜 아무 말도 안 해? 그러지 마. 괜히 무섭단 말이야! 하여튼 우리 자기는 가끔 엉뚱한 데가 있어 탈이야!」 여전히 그녀는 등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영규가 아직 동석일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어느 정도 어둠에 눈이 익자 들어갈 곳과 나올 곳이 확연히 구분되는 오밀조밀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그녀의 희디흰 몸매가 관능적인 볼륨감과 함께 영규의 두 눈을 사정없이 찔러왔다. 특히 개미허리는 아니지만 적당하게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라인 밑으로 암팡진 탄력감을 과시하고 있는 우윳빛 둔부라인 그리고 팽팽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허벅지와 미끈하게 빠진 종아리는 영규로 하여금 원초적 성적 욕망을 충동질 할 만큼 뇌쇄적이었다. - 꿀꺽! 영규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