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관료제에 대해 통렬하게 비난하고 있지만, 그러한 비난은 요점을 놓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의 전개에 대해 관료제나 관료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 아니고 그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관료제란 업무를 수행한 결과이자 징후일 뿐, 그러한 문제의 뿌리는 훨씬 더 깊다. 관료제나 관료들이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경제 통제에 문제가 있다. 미제스는 범죄인은 관료제나 관료가 아니라 정치 및 경제 체제라는 점을 이 책에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관료주의의 문제는 정부의 경제 통제가 원인
오늘날 관료제의 문제점은 관료적 방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될 일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생산과 분배 체제에는 관료제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심하게 나타나는 관료적 경직성으로의 추세는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 개입의 결과다. 그것은 사회의 경제 조직의 틀에서 이윤 동기가 수행하는 역할을 제거하려는 정책들의 결과다. 다시 말해 정책들이, 정치 및 경제 체제가, 정부의 경제 통제가 관료제화와 관료주의를 야기한다.
국민 경제 교육의 필요성 강조
사회주의, 개입주의, 관료주의의 경향은 혁명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의회가, 더 나아가서는 유권자가 그렇게 만들었다. 미제스는 시민들이 경제 문제를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스스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주 국가 국민들은 경제 문제에 대한 상식을 갖출 의무가 있다. 사회주의와 개입주의의 심각한 폐해를 알 수 있고, 관료제화를 막을 수 있다. 미제스가 강조하듯이 관료제화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 경제 교육이 중요하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1881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나 1973년 미국에서 사망한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다. 1906년 빈 대학에서 법학 및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09년에 오스트리아 상업회의소의 경제 자문역이 되었다. 1차 대전에 복무한 후 빈 대학의 경제학 교수가 되었고, 1934년에는 제네바의 국제학 대학원의 국제 관계학 교수가 되었다. 1945년 뉴욕 대학 객원 교수가 되어 1969년 은퇴할 때까지 머물렀다.≪화폐 및 신용 이론≫(1912), ≪사회주의≫(1922), ≪인간행동론≫(1949)과 같은 대작 이외에도 ≪전능한 정부≫(1944), ≪관료제≫(1944), ≪이론과 역사≫(1957), ≪경제학의 인식론적 문제≫(1960), ≪경제학의 궁극적 기초≫(1962)와 같은 수많은 저서를 통하여 다방면에 걸쳐 창의적인 업적을 남겼다. 부인 마르기트 폰 미제스(Margit von Mises)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함께한 세월≫에서 미제스의 창의적 천재성을 재치 있고 우아한 필치로 이야기했다.
미제스는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F. A. 하이에크), 두 명의 미국경제학회 회장(고트프리트 하벌러와 프리츠 매클럽),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많은 경제학자들(오스카 모르겐스턴, 머리 로스버드, 이스라엘 커즈너 등)을 제자로 배출했다. 한스 헤르만 호페를 비롯한 많은 오스트리아학파의 학자들이 미제스의 사상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