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광수는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가 콜레라에 걸려 죽는 등 불우하고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동학 당원인 박찬명 대령의 집에 머물다가 1905년 일진회 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으로 갔다. 그곳에서 홍명희, 최남선 등을 알게 됐고 메이지 학원 재학 시절에는 톨스토이에 심취하기도 했다. 1910년 메이지 학원을 졸업하고 이승훈의 초청으로 오산학교 교원이 되었다. 1913년 오산학교를 그만두고 상하이로 갔다가 이듬해 러시아 《대한인정교보》 주필로 일했으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귀국했다. 1915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 편입해 수학했다.
1917년 《매일신보》에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연재했다. 이광수는 『무정』에서 봉건적 질서와 신문명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당시 사회상을 고스란히 그려 냈고, 남녀 간의 애정 문제를 둘러싼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자아와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는 계몽적 성격까지 담아냈다. 『무정』을 통해 그는 한국 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흙』, 『단종애사』, 『유정』, 『사랑』 등을 꾸준히 발표하며 한국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19년 「조선청년독립단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사장 겸 편집국장으로 일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1922년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1924년 《동아일보》에 사설 「민족적 경륜」을 발표하는 등 ‘자치론’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후 본격적으로 친일의 행보를 걸었다. 해방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나왔으나 1950년 납북되었다가 폐결핵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