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신도 나를 비난할 수는 없으리라.’ 서른둘의 겨울, 희재는 많이 아팠다. 부모가 남편의 손에 구속 수감되었고, 남편의 내연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아이를 잃었다. 10년 만에 찾아온 아이를. “결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야. 다시 태어나도.” 그렇게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눈을 뜨니, 스물둘의 봄이었다. 무려 10년을 거슬러 올라왔다. 복수, 남은 건 오로지 복수뿐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도영을 만나러 간 희재는 이상하게 도영의 흔적보다는 지난 생에서 시숙이었던 도준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남자는 백도준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 그녀는 도준에게 먼저 접근하기로 한다. “나 자극하지 말지, 채희재. 진짜 구미가 당기니까.” 도준은 처음 본 희재가 낯설지 않다. 어쩐지 마음이 아프고 아리었다. 가슴이 벅차고 두근댔다. 뭔가 희재에게 꿍꿍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몸을 던지기로 한다. 그런 그에게 가장 걱정되는 건 자신의 것이라면 기를 쓰고 달려드는, 쌍둥이처럼 닮은 이복동생 백도영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때까지 조금이라도 아꼈던 건 모두 가져가서 망가뜨렸으니까. “뭐, 어때. 별의별 거 다 맞춘 사이에, 응?” 백도영은 역시나 백도준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채희재 앞에 나타났다. 도준의 마음에 빠져 복수를 잊고 흔들리던 그녀는 백도영의 뻔뻔하고 방종한 작태를 보고 복수에 대한 열의를 다시 깨닫고 만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도준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도영을 유혹해서 망가뜨리기 위해 계속 그와 어울릴 수밖에 없는 희재,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도준. 그는 도영에게 접근하는 채희재를 이상하게 놓고 싶지 않다. 꺼내 올리고 싶다. 도준은 점점 더 희재에게 매달리게 된다. “채희재,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도준은 희재가 가는 곳곳마다 나타나 제동을 건다. 도영이 참석하는 질 나쁜 파티에서 곤경에 처한 희재 앞에 나타난 사람도, 바로 도준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여자 앞에서 바르고 점잖은 남자의 낯을 던져 버리고 맹수의 눈빛을 번득인다. “채희재, 백도영 하나면 되는 건가? 백도영을 망가뜨리고 싶어? 똑바로 이야기해.” “똑바로 이야기해요? 정말 그걸 원해요? 내가 뭘 원하는지 알면 감당할 자신은 있어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듯, 건조한 미소를 짓는 희재에게서 도준은 누군가가 겹쳐 보인다. 그녀가 망가뜨리길 원하는 걸 자신이 모두 없애 준다면, 그러면 그녀는 행복해질까. 그렇다면 그렇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