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고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비명을 지르던 월은 알 수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에서 흐르는 질척하고, 삿된 기운을. 비릿하고 뜨거운 피 냄새를.
“부모의 원수….”
남자의 푸른 눈동자가 여자를 향했다.
티끌 하나 묻은 적 없던 새하얀 옷은 가족들의 피를 가득 머금어 새빨간 동백꽃 같았다.
무엇보다 붉게 피었다가 봄이 오면 마치 목이라도 잘린 듯 대가리를 툭 떨어뜨리고 마는.
이 빌어먹을 인생.
여신의 사랑, 그것 하나만을 바라며 짧은 생 정순하고 순결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는데.
그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라면, 차라리 심장에 스스로 검을 찔러 넣고 죽고 말 테다.
전쟁 포로에 불과한 왕녀에게 빠진 어리석은 남자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월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날 보고 아파해야지.”
낮게 깔리는 목소리는 감미롭지만, 덧없었다.
“당신은 내 옆에서 그걸 지켜봐야지. 이곳이 당신의 지옥이잖아.”
박온새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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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글을 쓰는 먹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