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욱 작가가 등단 8년 만에 내놓은 첫 소설집. 작가는 동시대 도시인들의 삶과 세태를 냉소적인 입담으로 가감 없이 짚어내며, 앞지르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경쟁사회의 폐부를 응시한다. 특유의 위트와 입담이 무거움과 가벼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어, 문제의식은 깊이 있으나 묵직하거나 처연하지 않다.
새로운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침대 크기에 대한 집착으로 보여주는 '그 여자의 침대', 장남과 여동생, 막내 사이에서 홀대받았던 차남의 소외감을 클래식과 연결한 '벽', 고립감으로 온몸이 붕 떠 있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생명의 전화', 프로 바둑기사 지망생의 좌절을 그린 '이무기'.
많은 것을 연체하고 사는, 많은 것이 연체되는 '나'의 삶을 다룬 '연체', 초등학생 때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뒤늦게 깨달은 것들의 소회를 담은 '해피버스데이', 아내와 다투고 집을 나가도 갈 데가 없는 주인공의 속내를 보여주는 '링 마이 벨', 집 나간 아내를 기다리며 모든 것이 분명했던 이십대를 회상하는 '그 사이' 등 여덟 편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