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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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배수아, 등단 20주년 그리고 2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어째서 소설이 시를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반대로 시는 왜 소설을 쓰고자 하는가 어떠한 경계에도 갇히지 않은, 혹은 갇힐 수 없는 존재 “손바닥 바로 아래에 그녀의 움직이지 않는 얼굴이 있었다. 나는 하나의 감정이에요, 하고 말하는 얼굴.” 또한 거기서 우리의 이름은 어떻게 불리고 어떻게 기억되는가 “이제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줘요.”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다른 배수아 소설이 그러하듯 주요한 스토리라인을 요약하려는 시도를 부질없게 만드는 작품이다. 소설 속 이야기는 몇 개의 인물과 설정과 세부 사항을 끊임없이 반복하거나 변주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제목조차 갖지 않고 숫자로만 표시된 4개의 장에 걸쳐서 이야기는 그물처럼 온 사방에 연결되어 있어 책을 펼친 독자가 아름답고 낯선 문장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여니’는 극장장이 아야미에게 소개시켜준 독일어 선생이자, ‘부하’가 약을 배달하는 고객이자, 밤마다 그가 전화를 거는 텔레폰 서비스의 대화 상대이자 한편 아야미가 근무하는 오디오 극장의 마지막 공연이었던 사덱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 낭독자이기도 하다. 또한 독일인 소설가 볼피가 만나기로 예정되었던 여자이자, 반복해서 걸려오는 전화에 아야미가 대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 반복되고 변형되는 여니에 대한 묘사는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형식 자체를 묘사하는 것과도 같다. 마치 수수께끼처럼, 그러니까 덤벼들면 풀 수 있는 과제처럼, 그러나 그 모든 시도들이 소설을 읽다보면 무의미해져버리는 것처럼. 즉, 이 소설은 독자가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작가가 설정한 도착 지점에 당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 이야기 속에, 다시 말해 작가가 건설한 몽환의 세계 안에 영원히 머물기를 원한다. 장이 바뀌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무언가 뚜렷한 상황과 전개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내 인물들과 시공간은 꿈의 파편처럼 흩어져 의미와 존재 모두가 사라진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마지막에 남은 것은 “소리의 그림자”,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 “보이지 않는 사람들” 같은 매혹적인 환상이다. 독자가 구체적인 등장인물과 전통적인 기승전결이라는 소설 형식에 대한 강박을 버린다면, 배수아가 만든 몽환의 세계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한국어 문장이 선사할 수 있는 희귀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에 대한 체험이 될 것이다. 배수아의 문학이 앞으로 어디로 향하고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Yazar hakkında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소설과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0년대 한국소설의 새로운 문법을 개척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으로 2003년 제36회 한국일보문학상, 『독학자』로 2004년 제17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인형』, 『심야통신』, 『그 사람의 첫사랑』, 『훌』, 『올빼미의 없음』과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 『부주의한 사랑』, 『철수』, 『붉은 손 클럽』,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동물원 킨트』, 『이바나』, 『독학자』, 『에세이스트의 책상』, 『당나귀들』, 『북쪽 거실』, 『서울의 낮은 언덕들』 그리고 에세이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가 있다. 마르틴 발저 『불안의 꽃』, 야콥 하인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 베르톨트 브레히트 『전쟁교본』, 에트가 힐젠라트 『나치와 이발사』 등 다수의 책을 독일어에서 한국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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