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생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국의 숨 막히는 첩보전
현대 스파이 소설의 아버지 에릭 앰블러의 걸작
에릭 앰블러의 장편소설 『공포로의 여행』이 최용준 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국내 초역.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270번째 책이다.
영국 작가 에릭 앰블러는 <현대 스파이 소설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스릴러 장르 문학의 거장으로, 당시까지 흥미 위주의 삼류 소설로만 취급되던 스릴러 장르의 수준을 높이 끌어올려 존경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존 르카레와 같은 스파이 스릴러 작가들의 성공을 가능케 한 발판을 마련한 것도 그였다.
『공포로의 여행』은 앰블러의 대표작 중 하나로,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반전, 생생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이야기로 스릴러 장르에 큰 획을 그은 걸작으로 평가된다.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영국 엔지니어인 주인공 그레이엄이 터키 정부와 비밀스러운 무기 거래 계약을 체결한 후 독일 정보부의 추격을 받으며 벌어지는 스릴 넘치는 모험을 담았다. 전쟁에 돌입한 국가들의 치열한 암투 속에서 평범한 한 개인이 뜻하지 않은 위험에 휘말려 들게 든다는 설정의 이야기로, 앰블러 소설들이 그렇듯 국제적인 스케일의 사건들과 개인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운이 드리운 유럽. 영국 무기 제조사의 직원인 엔지니어 그레이엄은 터키 정부와 비밀스러운 무기 거래 계약을 체결하고 오는 길에 독일 정보부가 보낸 암살자의 추격을 받는다. 터키 비밀경찰은 그레이엄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 그를 소수 인원만 탑승하는 화물선에 승선시킨다. 폐쇄된 배 안에는 비밀경찰이 사전에 신원을 확인해 둔 몇 명의 승객들만 탑승해 있다. 헝가리 출신의 미녀 댄서, 독일 고고학자, 터키 담배 수출업자, 프랑스 사회주의자……. 이렇다 할 위험 요소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레이엄이 그럭저럭 항해에 적응해 나갈 무렵, 배에서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처럼 이 작품의 주요한 서스펜스는 주인공 그레이엄이 과연 죽음의 위협을 피해 무사히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배 안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전쟁 중인 각국의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충돌하는 첩보전이 벌어지고, 그 안의 인물들 중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목숨을 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레이엄의 <공포>에 쉽게 몰입하게 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또한 다양한 계층과 사상을 드러내는 생생하고 개성적인 인물들 또한 독서의 재미를 더해 준다. 이러한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협력이 국제적인 스케일의 사건들과 연루되며, 다양한 두뇌 싸움과 반전, 서스펜스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또한 앰블러의 창작 인생에서 특히 중요한 시기로 평가받는 경이로운 초기 작품 세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데뷔작 『어두운 변경』(1936)에서부터 5년 동안 출간된 『보기 드문 위험』(1937), 『어느 스파이의 묘비명』(1938), 『경계의 이유』(1938), 『디미트리오스의 가면』(1939), 『공포로의 여행』(1940)으로 이어지는 여섯 권의 초기 소설들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둠과 더불어 당시의 값싼 흥미 위주의 스릴러 소설들과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 『공포로의 여행』은 그 시기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미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에서 대가의 솜씨에 도달했던 앰블러가, 정교한 서술 속에서 독자들이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최고의 원숙미를 보여 준다.
이 책을 옮긴 최용준 번역가는 박진감 넘치는 앰블러의 문장들을 능숙한 우리말로 섬세하게 옮겼다. 국내 초역으로,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이 작품이 처음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되는 셈이다. 번역 원본으로는 2002년 랜덤 하우스가 출간한 빈티지 크라임 판본을 사용했다. 열린책들에서는 지난해 앰블러의 또 다른 장편소설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을 출간한 바 있다.
Eric Ambler
현대 스파이 소설의 아버지 에릭 앰블러는 1909년 런던 남동부 찰턴에서 태어났다. 노샘프턴 폴리테크닉 인스티튜트에서 공학을 공부했으나, 학업을 그만두고 전기 회사에서 일하면서 작가의 꿈을 키워 갔다. 처음에는 극작가를 지망했지만, 점차 스릴러 장르에 매력을 느껴 소설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값싼 흥미 위주의 스파이 소설들과 결을 달리하는 데뷔작 『어두운 변경』(1936)에서부터, 이후 1940년까지 5년간 『보기 드문 위험』(1937), 『어느 스파이의 묘비명』(1938), 『경계의 이유』(1938), 『디미트리오스의 가면』(1939), 『공포로의 여행』(1940) 등 지금도 극히 높은 평가를 받는 여섯 권의 스릴러 소설들을 발표하면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또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도 크게 활약하여, 1953년 아카데미 영화제 각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59년 『무기의 통로』를 발표하며 영국 추리 작가 협회상을 수상했고, 1962년 출간한 『한낮의 빛』으로 미국 추리 작가 협회상을 수상했다. 이어 『레반트인』(1972)으로 영국 추리 작가 협회상과 미국 추리 작가 협회상, 스웨덴 범죄 소설 아카데미상을 받았으며, 『닥터 프리고』(1974)로 프랑스 추리 소설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1981년에는 영국 문화를 세계에 알린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으며, 1986년에는 영국 추리 작가 협회가 최초로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인 다이아몬드대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학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갖춘 앰블러의 작품들은 스릴러 장르의 작품성을 높이 끌어 올려 존경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변화시켰다. 이후 존 르카레와 같은 작가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것도 그였다. 앰블러는 1998년 런던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