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힘이 세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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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디아와 디폴트의 경계에 선 인도


그럼에도 세계는 왜 인도에 주목하는가



브릭스(BRICS)의 일원이자 중국과 함께 친디아(Chindia)로 묶이는 인도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자, 전세계가 주목하는 21세기의 경제 문화 대국이다. 한편에선 인도의 ‘디폴트 선언’을 거론하는 등 인도경제에 불안한 시선을 던지는 이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든 12억이 넘는 인구, 유럽대륙과 맞먹는 영토, 뛰어난 인재를 갖춘 인도를 빼고는 앞으로의 세계경제를 낙관하거나 비관하기 힘들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인도에 대한 지식은 무엇일까?


델리대학에서 인도사를 전공한 손꼽히는 인도 전문가 이옥순 교수는 한국‒인도 수교 40주년을 맞아 출간한 『인도는 힘이 세다』에서 변하지 않는 인도와 새롭게 변한 인도의 양 측면을 균형 있게 살피며, 새로운 관점으로 인도의 역사․문화․사회를 들여다본다. 인도에 진출하는 기업은 물론 여행자들의 필독서인 저자의 대표작『인도에는 카레가 없다』(1997)가 인도의 참모습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 이번 책은 5000년간 변한 듯하면서도 변하지 않은 인도의 현재 모습을 9가지 주제로 나눠 설명한다. 인도사 전공자답게 인도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인도의 현재와 가능성을 통찰하는 저자의 설명과 25년간 인도와 한국을 넘나든 경험이 어우러져 읽는 맛도 뛰어나다. 마지막 장인 9장에는 중국문화와 인도문화를 비교해 세계가 주목하는 두 나라를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했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인도가 달라지고 있다


: 쇠고기를 먹는 힌두와 신흥 억만장자


지금까지 알고 있는 인도는 인류문명의 원형을 간직한 이상향이자 요가와 명상을 전세계에 퍼뜨린 정신주의의 나라다. 하지만 오늘날 인도는 성범죄와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이미지도 함께 가지고 있다. 어느 쪽이 인도의 참모습일까? 세계는 인도의 어떤 가능성을 읽었기에 인도를 중국과 함께 21세기의 핵심국가로 인식하는 것일까? 지난 25년간 인도와 한국을 오가며 생활해온 인도 전문가 이옥순 교수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급변하는 인도의 거리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리고 채식을 즐기는 인도에서 맥도날드가 대성공을 거두고, 성지순례와 지옥 같은 출퇴근 전쟁이 공존하며, 1조원이 넘는 개인저택을 가진 부자들이 속출하는 인도의 오늘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마힌드라 그룹이 국내의 쌍용차를 인수하고, 포스코가 인도 현지에 제철소를 세우려는 등 한국 인도 수교 40주년의 결과는 이미 우리의 실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인도 센섹스(SENSEX)지수도 더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정보통신,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분야는 인도에 진출하기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인도와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국민성이 교활하고 진실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즉 인도는 좋지만 인도인은 싫다는 것이다.


인도인을 싫다고 여기는 것은 낡은 관습이 지배하는 낙후한 나라라는 오래된 편견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편견부터 버리라고 충고한다. 대표적으로 힌두(교도)는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쇠고기를 먹는 힌두도 분명 존재한다. 심지어 서양에 힌두교를 알린 민족주의자 비베카난다는 동포들에게 쇠고기를 먹고 근육을 키우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오히려 그들의 먹을거리는 지역과 카스트마다 다양하다. 히말라야지방의 브라만은 양고기를 먹고, 해안가에 사는 브라만은 생선을 먹는다(‘구미호는 왜 무서운가’ 본문 245~52면 참조).


인도가 정신주의의 나라라고만 생각하기에 인도인의 물신주의와 장사 수완에 놀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예로부터 인도에서는 부의 신 락슈미와 가네샤가 가장 인기를 끌어왔으며, 부의 신을 기리는 축제인 디왈리 축제는 전세계 어떤 축제보다 휘황찬란하다. 그때는 온 도시가 부의 신을 맞이하기 위해 불을 밝히고, 고가의 선물이 오고가기도 한다. 인도 최대의 쇼라고 불리는 결혼식은 어떤가? 인도의 부자들은 신랑에게 헬리콥터를 선물하고 57억원어치의 혼수를 보내는가 하면 모든 하객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기도 한다. 릴라이언스 그룹의 무케시 암바니의 경우, 높이 173미터의 27층짜리 개인저택에 600명의 하인을 두고 생활한다. 저명한 구루들은 특급호텔 맞먹는 집에서 살며 자가용제트기를 타고 여행한다(「4장 개미도 황금을 파먹는다」 참조). 인도의 중산층과 부유층은 넉넉잡아 우리나라 인구의 여섯 배인 3억 명가량이다. 사실 인도에서는 신을 믿으면서 부를 추구하는 것이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탈이지만 부의 추구를 그 과정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인도는 카스트제도 때문에 경제대국이 될 수 없다?


: 학벌․지역카스트 대한민국은 어떻게 발전했나


인도를 이야기할 때 카스트제도는 빼놓을 수 없다. 인도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것도 바로 카스트제도다. 신분이 정해져 있는 카스트제도 때문에 대다수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정당한 성과를 보장받을 수 없어 성취욕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가 고대부터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한가지는 상인의 역동성이다. 오늘날 중국과 여러 면에서 비교되는 인도가 갖는 상대적 장점의 하나도 기업가정신의 현존이다. 인도에서 사업이나 장사는 “장사나 할까?” 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인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의 신성한 의무이자 천직이었다. 오늘날 타타, 비를라, 고엔카, 달미아, 고드레지 같은 인도의 대기업 집단은 신드 상인, 구자라트 상인, 파르시 상인 등 고대부터 바다를 통해 부를 축적한 서해안지방의 상인들이 세웠다. 1991년 인도가 경제자유화로 방향을 선회한 뒤 돈을 번 신흥 억만장자도 다 상인 출신이다(‘돈 벌기의 달인들’ 본문 144~53면 참조).


상인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전세계 학계를 주름 잡는 인도인은 대부분 브라만 출신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를 비롯해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인도인도 여럿이다. 펀자브 출신의 크샤트리아는 IT산업에서 맹활약 중이다(‘황금보다 값진 두뇌’ 본문 159~66면 참조).


그렇다고 민주주의 사회인 인도에서 불가촉천민(달리트)이 예전과 같이 극심한 차별을 받는 것도 아니다. ‘억압받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달리트’도 그들 스스로 선택한 이름이다. 독립한 인도정부는 불가촉천민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관직과 공기업을 비롯해 교육기관의 입학정원에서 그들에게 일정한 비율을 할당했다. 이후 지난 60년 동안 교사나 공무원이 되어 사회적 상승이동을 이룬 달리트 중산층이 생겨났으며, 달리트 출신의 대통령은 물론 대법원장과 대학총장도 등장했다. 인도 최대 주에서 정권을 잡은 달리트 출신 여성 정치인 마야와티는 카스트제도의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달리트가 누리는 특별혜택을 받기 위해 스스로 격을 낮추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인도사회의 카스트제도를 비판하지만 ‘우리 사회’의 수직구조와 차별제도는 주목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지적은 뼈아프다. 인도는 눈에 보이는 제도적인 카스트를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학벌카스트, 지역카스트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도는 바깥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느리고 길게 변화를 지속하는 사회다. 물론 카스트의 수직사회인 인도에서는 지지자를 등에 업은 유명정치인의 세습과 이에 따른 부정부패가 큰 문제다. 또 결혼지참금과 혼수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8000명(2010년)에 이르고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빈번한 것도 사실이다(「3장 팔로워를 먹고사는 정치인」 참조). 저자는 그럼에도 인도에서 카스트제도가 다양성을 품는 순기능을 해왔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인도에 쳐들어온 박트리아인, 그리스인, 페르시아인, 훈족 등은 제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눌러앉아 인도의 카스트에 흡수되었다. 평등을 지향하는 기독교인마저 어느 카스트에서 개종했느냐에 따라 ‘나다르 기독교인’ ‘레디 기독교인’같이 힌두로서의 카스트를 앞에 붙인 채 기독교인이 된다.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기독교인이 보여주는 경계의 모호함과 복잡한 정체성은, 누구든 어떤 집단이든 수용하는 놀라운 통합성과 융통성을 자랑하는 카스트제도의 속성을 알려주는 증거다.




모든 것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 국가가 강한 중국, 사회가 단단한 인도


고대의 요가 수행자와 같은 동작을 하는 인도인을 오늘날 거리에서 만날 확률은 100퍼센트다. 또한 인도는 400년 전에 왕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떠도는 집시를 오늘날에도 만날 수 있는 곳이다(‘시간은 늘 우리 편’ 본문 169~78면 참조).


이옥순 교수는 밖의 것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쉽게 변하려고 하지 않는 인도인의 특성을 어울리기 힘든 다문화사회 인도를 하나로 묶는 힘으로 바라본다. 그 힘은 인도 역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도의 독립을 일군 간디의 비폭력운동은 자신이 살던 구자라트 지방의 ‘카다도’라는 타협과 상생의 방식에서 나왔다. 즉 “내가 반을 접을 테니 당신도 반을 접으세요”라는 협상 방법은 인도 독립의 열쇠였을 뿐만 아니라 인도문명을 지속하게 한 비법인 셈이다.


서구화한 인도인이 영적 생활을 버리지 않는 것도 주목할 현상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인도인은 인터넷과 위성방송, SNS를 통해 24시간 신을 만나고, 소홀하던 아침예배도 열심이다. 단식을 실천하며 축제를 풍성하게 즐기는 것도 그들이다(「4장 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 참조).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전통은 인도인을 오늘날까지 구비전통의 수다쟁이로 남아 있게 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이 자신의 저서 『논쟁적인 인도인』에서 밝혔듯, 그의 고향인 벵골지방에는 누가 ‘그렇다’라고 외치면 어디선가 곧바로 ‘아니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논쟁이 유명하다. 이러한 전통은 다시 언론과 출판의 자유로 이어져, 인도는 다른 나라와 달리 종이신문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다.


인도문화가 가진 힘은 중국과 비교하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세계의 중심을 자처한 중국은 역사 이래 언제나 주변국을 한수 내려다보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국굴기’를 외치는 나라다. 반면 고타마 붓다를 배출한 인도문명은 현세적인 것만큼 내세에 의미를 두고 ‘위대한 나라’보다는 ‘진정한 나’를 찾는 데 관심을 두었다. 양국에서 최고의 군주로 뽑는 진시황과 아소카를 비교해도 이 차이는 분명하다. 진시황은 ‘힘에 의한 통치’를 하며 자신을 위해 크고 화려한 아방궁과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다. 아소카 역시 거대사업을 일으켜 힘을 과시했지만 다수의 구원을 기원하며 힌두사원을 세우는 차이를 보인다. 오늘날 인도에 남아 있는 거대한 무덤은 모두 이슬람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쿵푸와 요가에서도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쿵푸와 요가 모두 몸과 마음을 닦으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쿵푸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목표인 반면, 요가는 자신을 이기라고 강조하는 점에서 쿵푸와 다르다.


국가의 주도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중국과 달리 다원적인 인도는 내부비판이 많아서 속도 면에서 중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아마르티아 센은 고도성장을 추구하는 인도정부를 어리석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인도에는 강대국을 꿈꾸는 연방정부의 정책에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많다. 저자는 힘을 가지기보다 힘을 버리는 걸 칭송하는 인도문명의 정수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1세기를 ‘아시아의 세기’로 만들 두 나라이지만, 급격한 성장과 변화 뒤에 감춰진 모순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상이한 양국은 모순의 양상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빈곤층은 인도가 중국의 두 배가 넘지만 빈부격차는 중국이 심하다. 공산주의를 내건 중국이 경제적으로 덜 평등한 반면에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인도에서 카스트제도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국가가 강한 중국과 사회가 단단한 인도, 둘 중 어느 나라가 21세기에 어울리는 나라일지에 대해서 저자는 인도의 손을 들어준다 (「9장 인도에서 바라보는 친디아」 참조).




인도는 아픈 과거를 되풀이할 생각이 없다


: 문명의 핵심을 들여다보는 수준 높은 교양서


인도를 제대로 알려 하지 않고 무턱대고 인도에 진출한 국가와 기업들은 대부분 쓴맛을 봤다. 닭고기가 주 제품인 KFC, 염소고기 버거를 들고 인도 시장을 두드린 맥도날드는 인도 국민의 거센 반격에 밀려 점포가 습격받고 물러난 경험이 있다. 이들의 실패는 대영제국의 실패를 떠올리면 당연한 결과다. 무력을 쓰지 않는 정신주의의 나라로만 알려져 있던 인도는 세포이항쟁을 일으켜 영국에 물리적으로 저항하고, 비폭력투쟁을 통해 영국의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히기도 했다. 영국은 물러나면서도 곤혹을 치렀다. 식민지시대에 인도에 진 빚은 2008년에야 비로소 다 갚을 수 있었다. 다국적기업도 한발 물러서고 나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제공되지 않는 세계 유일의 맥도날드 매장이 바로 인도에 있다.


인도인을 순수하고 순종적이며, 무력을 멀리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만 바라보다가는 실리적인 인도인에게 곤욕을 치를지 모른다. 인도를 찾는 사람들은 인도를 기회와 황금의 땅으로 여기지만 오늘날 인도는 열강에 부를 약탈당했던 과거를 되풀이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비록 지금은 인도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지만, 중국과 함께 향후 세계경제의 핵심국가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도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최신정보가 아닌 인도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인도문명의 핵심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손꼽히는 인도전문가인 이옥순 교수의 이 책을 통해 느리지만 분명하게 변화를 거듭하는 인도의 과거․현재․미래를 한번에 꿰뚫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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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인도 델리대학교에서 인도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중이다. 역사의 변방에 위치한 식민지인, 여성, 비서구세계와 인도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 『인도에 미치다』『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절망, 인도』『위대한 영혼, 간디』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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