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불변의 감성, 사랑을 주제로 한 옛 시인과 현대 시인의 감성 교감
한시는 어려운가? 재미없는가?
‘한시(漢詩)는 어렵다. 고루하다. 재미없다.’
이것은 한시를 대하는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태도다. 그러나 시대성과 공간성의 거리를 걷어내고 옛 사람의 일상과 감성을 들여다보면 우리네 삶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우리 선조들도 우리처럼 사랑을 꿈꾸고 연인을 그리워하며 이별에 가슴앓이 했다. 스마트폰도 없었고 자동차도 없었기에 그리운 연인의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도 없었고, 먼 곳에 있는 임을 마음 내키는 대로 찾아갈 수도 없었지만, 그래서 그네들의 사랑은 더 애달프고 절절했다.
로맨틱한 한시 VS. 패션지 《아레나 옴므+》 에디터이자 연애 칼럼니스트 이우성 시인의 사랑 이야기
이우성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걸 즐기는 작가다. 자신을 감히 ‘미남’이라고 소개하는 이 도발적인 젊은 시인이 작년 겨울부터 로맨틱한 옛 시와 옛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에 푹 빠졌다. 그는 옛 시인들의 시 속에서 시대 불변, 인류 보편의 감성, 사랑의 가장 특별한 순간들을 포착해냈다. 그리고 극도로 정제된 언어로 표현된 한시에 표현된 사랑 속에서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추억하고, 사랑의 예외적 순간들을 ‘사랑스러운’ 고백들로 다시 들려주었다.
짝사랑, 사랑의 기쁨, 변심, 이별, 원망, 그리움, 추억까지……
지금 이 순간, 가장 로맨틱한 사랑이 시작된다!
『로맨틱 한시』는 7세기 신라 시대에 활약한 여승 설요로부터 조선 시대 뛰어난 문사였던 박제가, 임제, 최경창, 권필 등의 가장 로맨틱한 한시들을 엮은 책이기도 하다. 허난설헌, 이옥봉, 황진이, 이매창과 같은 여류 시인들의 시에는 불운한 현실 속에서 펼쳐낸 그녀들의 애달픈 삶과 사랑이 엿보인다.
모든 것을 걸었지만, 끝내 사랑에 배신당하고 버려진 조선시대 여인 이옥봉은 소식 한 자 전하지 않는 무정한 남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시를 썼다.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달 비친 비단창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꿈속의 내 영혼이 자취를 남긴다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겁니다.
꿈속에라도 남편을 찾아가 만나고 싶어 했던 비련의 여인, 이옥봉의 절절한 심정을 이우성은 이렇게 대변한다.
영혼이 무게와 발자국을 가지고 있다면
너에게 가는 길에 진작 싱크홀이 생겼을 거야.
쉽게 마음을 주고 떠나버리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남자의 무정한 사랑을 조선 시대 최고의 가객인 매창은 짧게 지나가는 봄에 비유하며 이렇게 노래했다.
不是傷春病 불시상춘병
只因憶玉郞 지인억옥랑
塵世多苦累 진세다고루
孤鶴未歸情 고학미귀정
지나가는 봄을 슬퍼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오로지 그대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생긴 병이에요.
티끌 같은 세상 괴로움만 쌓이니
떠나가 돌아오지 않는 그대 마음 때문이죠.
이우성은 깊은 사랑이 병이 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냈다.
“위에 염증이 있어요. 심해요.” 의사가 말했다.
“혼자 하는 사랑이 위에 쌓였나 봐요.” 내가 말했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올 때, “나, 너 좋아하냐?” 같은 단문을 SNS에 게시하는 것이 더 익숙한 세대다. SNS가 이 세대의 방식이라면 한시는 옛 시인들의 방식이었다. 사랑을 전하는 방식은 달라졌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고, 그 마음에 응답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설렘이 시작되는 사랑의 첫 단계부터 마음이 멀어진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 그러고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마음까지 담은 사랑의 옛 시들을 읽으며 이우성 시인은 여기, 우리의 사랑을 돌아본다. 사랑에 관한 그의 솔직한 고백들은, 지금 이 순간, 생애 가장 로맨틱한 사랑을 시작하고 싶은 흔들림을 가져다줄 것이다.
“사랑을 믿는 건,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믿는 것이다.”
시간을 뛰어넘어 사랑이 사랑에 답하다!
언제였지……?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진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게.
떨리고 설레고,
그 사람의 어디든 잡고 싶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게…….
……
세상의 날씨가 어떻든 함께 있으면 모든 세계가 화창해졌다.
그 애와 나의 날씨만이 존재했으니까.
행복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느낀 적이 또 있었나?
어떤 사람은 나를 설레게 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 저자 소개
이우성_글쓴이
그림 photo by 안선근
이우성은 시인이고, 패션매거진 《아레나 옴므+》 피처 에디터다. 그는 미적인 것을 동경한다. 또한 그것의 본질을 궁금해 한다. 비난조차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옷을 못 입는 것은 우울하고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멋쟁이도 아니고, 아름답지도 않으며……마음이 넓지도 않다. 이우성은 지난 10년 동안 글로서 자신을 증명해왔다. 그는 그러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문장씩 가까스로 이어나가는 일이 그에겐 어쩌면 한 끼의 식사와 같을 것이다. 그는 부끄러워한다. 스스로를 ‘미남’이라고 소개하는데, 인정이나 동경 따위가 아니라 질문이나 호기심에 가깝다. 2012년에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를 출간했다._이우성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영유아기의 그에 대해선 딱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그의 청소년기에 대해선 떠도는 소문이 많다. 확인되지 않는 낭설에 따르면 그의 주먹은 꽤 셌던 모양이다. 하지만 형과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해빠진 주먹이어서 집안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고등학생 시절, 첫사랑에게 편지를 쓰다가 숨겨둔 글쓰기의 재능을 발견,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다. 그 해 봄, 캠퍼스의 잔디밭에 둘러앉아 신입생 소개를 하던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툭, 내던진 말이었으나 그때부터 눈물을 뚝뚝 떨구며 시를 썼다. 2009년, 마침내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그날부터 시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 그는 2005년부터 패션매거진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여전히 서울에서 살고 있으나 항공사 마일리지만은 꽤 많이 적립했다. 여행보다 출장을 많이 다닌 탓이다. 쉬는 날에는 주로 축구를 하며 주먹의 힘을 키우고 있지만, 되도록 주먹 쓰는 일은 멀리하며 글을 쓰고 있다._황현진(소설가)
● 원주용_한시 옮긴이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안동대, 원광대, 상지대 등에서 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 겸임교수, 전통문화연구원 강사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고려시대 산문 읽기』, 『조선시대 한시 읽기』, 『조선의 산문을 읽다』, 『詩話 속의 漢詩 이야기』, 『손자병법을 읽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