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그래퍼 인생의 전환점이 될 대형 프로젝트를 맡게 된 선우난우. 큰 꿈에 부풀어 찾아간 강촌의 한 펜션에는 악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카락 좀 옆으로 갈라 볼래요? 9대 1 정도로?” “이 정도면 됐어요?” “하하하. 오랜만이다, 선우난우.” 지금도 이불킥 하게 만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중학 시절의 기억도 안 나는 동창과의 조우로 인해 패닉에 빠진 난우. 불편한 사람과의 불편한 동거 생활에 벌써부터 피로가 몰려오지만, 그의 무덤덤한 성격과 눈치 없음으로 인해 오히려 편안함을 느껴가고……. “15년 만에 만난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중학교 동창 말고, 남자 목선균으로 좀 봐줘.” “꼬시는 거야?” “어. 넘어오라고 기술 넣는 거야.” “나 쉬운 여자 아니거든?” “하하! 쉬우면 매력 없지. 그럼 좀 더 튕겨. 내가 더 따라다녀 줄게.” 불편한 동창에서 이제 좀 편한 친구가 되었다 싶었는데 남자로 다가오는 선균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난우. 보면 좋고, 안보면 궁금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인데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너의 마음에 대한 나의 대답이 DITTO!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본문 내용 중에서] “넌, 내가 남자로 안 보이냐?” “얘가 왜 아까부터 이상한 소릴 하고 그래? 그러는 넌 내가 여자로 보이니?” “가끔.” 그냥 웃고 말 것이라 예상했는데 선균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난우의 심장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했다. “너…….” “여자로 안 보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이상해?” “그래,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 네가 어디가 어때서, 하는 생각 안 들겠어?” “그건 또 그러네. 아, 몰라. 그래도 너하고 나는 아니다. 우리 사이에 뭐가 있었어야 남자, 여자로 어쩌고 한다고 하지. 안 그래?” “음, 아무것도 없었나?” 선균은 살피듯 물었지만 그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한 난우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선균이 곰곰이 생각에 잠긴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난우가 툭툭, 엉덩이를 털며 밤 인사를 건넸다. “아, 이제 잠이 좀 오겠네. 잘 마셨다, 목선균. 잘 자라.” 난우는 산뜻한 인사를 남기고 더는 남은 용건이 없다는 듯 타박타박 계단을 올라갔다. 몇 개 되지 않는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기 위해 오른손을 올리는데 급히 따라온 발자국 소리가 등 뒤에서 멈춰 섰다.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분다고 생각했는데 등 뒤에 멈춘 선균 때문인지 탁 트인 곳의 공기가 돌연 한낮의 그것처럼 열기를 품었다. 난우는 어쩐지 주변의 산소가 희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에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한껏 들이쉰 그 숨을 뱉기도 전에 선균의 손이 난우를 돌려세웠다. 그리고 난우에게 속삭이듯 아까 받은 인사에 대한 답을 했다. “잘 자, 선우난우.” “어? 어, 응.” 숨을 불어넣듯 귓가에서 속삭이는 선균 때문에 당황한 난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난우를 보며 소리 없이 웃은 선균이 다시 몸을 숙여 속삭였다. “밤새 잘 생각해봐. 어쩌면 우리, 꽤 잘 어울릴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