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져 버릴 것 같은 위태로움이 은근한 배덕감을 자극했다.
처음 볼 때부터 그랬지.
“날 기억하지 못하나 봅니다. 오래전에 본 적 있는데.”
물끄러미 자신을 응시하는 서희의 다갈색 동공에 타는 듯한 갈증이 일었다.
그 소란한 감정조차 예전과 닮아 있었다.
자신의 이복동생을 태운 채 음주 운전을 하다 사망한 유 기사.
한때 부모보다도 문혁을 더 챙겨 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였다.
굳이, 바쁜 일정 중 인성그룹을 대표하여 장례식에 참석했던 이유가.
그리고 유 기사의 외동딸, 유서희.
자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저희 아버지는 술을 드시지 않아요.
간 이식 수술을 받으셨거든요.”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지만 안 궁금합니다.”
어미를 잃은 새끼같은 눈빛이 무감한 감정 속 잔악한 가학성을 자극했다.
나락으로 떨어지길 부추기고 싶은 충동이 스몄다.
저 모습이 왜 이렇게도 꼴릴까.
“원하시는 게 있다면, 다 해 드릴게요.”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뭔데요?”
남자의 눈이 다시금 서희의 얼굴 위를 느릿하게 유영했다.
긴 침묵을 깬 것은,
아까보다 더 첨예하게 침체된 묵직한 저음이었다.
“내 아내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