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 쓸개 따윈 없는 을, 한지호.
상사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나간 자리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부탁을 들어준다면 동등한 조건으로 한지호 씨의 청탁을 들어주지.”
“제가 뭘 해 드리면 되는 거죠?”
“짤막한 애인 행세.”
언제나 을이었던 지호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
“좋아요, 하세요.”
그녀가 그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흔들림 없는 그녀의 눈에 무심하던 남자의 눈이 이채를 띠는 것도 모르고서.
“내가, 뭘 할 줄 알고?”
어설픈 갑의 도도함에 을이 된 남자가 다가서 속삭였다.
이 관계의 시작은 지금부터.
서로를 각인시키는 가장 특별한 순간, 터치 포인트.
유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