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욕망에 충실했던 가난한 청춘의 그림자를 좇다
비참한 현실에 저항하며 끈질기게 살아가는 민중에게서 목격한 마지막 희망
▶ 파솔리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뛰어난 예술가다.―수전 손태그
▶ 이 작품은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았다. 주인공 톰마소의 인생은 파솔리니의 냉정한 문체와 생생한 디테일에 의해 거침없이 끓어오른다.―《뉴욕 타임스》
「데카메론」, 「천일야화」, 「캔터베리 이야기」, 「살로, 소돔의 120일」 등 전후 1960년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하지만 그가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이탈리아 문단의 총아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세계문학전집 253번으로 출간된 『폭력적인 삶』은 ‘열정적인 생동주의자’였던 파솔리니의 예술세계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로마 변두리 빈민촌에 살면서 폭력과 절도 등을 저지르는 빈민과 동성애자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낀 파솔리니는 이 소설을 통해 어두운 뒷골목 문화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파솔리니는 ‘폭력적인 삶’을 꿋꿋이 견디며 결국 민중을 구원하고자 자신을 불사르는 주인공 톰마소의 인생을 통해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민중의 파괴적인 힘’을 확인하려 했다.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위선을 낱낱이 벗겨낸 이 작품으로 파솔리니는 네오레알리스모 문학의 기수가 되었으며, 이후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1922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볼로냐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대학교까지 졸업한 후 어머니의 땅이기도 한 프리울리 지방 농민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첫 시집 『카사르사의 노래』를 발표해 젊은 나이에 이탈리아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하지만 자신의 동성애 성향이 알려져 공산당에서 축출되고 쫓겨나듯이 로마로 이주했다.
파솔리니는 로마 변두리에 사는 좀도둑, 동성애자, 살인자 등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끼고 그것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사회 비판적으로 로마 변두리 문화를 탐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소설 『거리의 아이들』과 『폭력적인 삶』을 발표했다. 이 소설들은 과격한 표현과 적나라한 성 묘사로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파솔리니는 음란죄로 기소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폭력적인 삶』을 통해 파솔리니는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고,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눈에 띄어 「카리비아 밤」 등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당시 사회의 허상을 파헤친 시와 소설을 발표해 네오레알리스모 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꾸준히 시나리오 작업을 해 오던 파솔리니는 1961년 「아카토네」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파시즘과 부르주아를 향해 투쟁을 벌였으며, 평생 시와 영화, 현실의 결합을 꿈꿨다. 그는 신화를 재해석하고 지배 체제에 저항하려는 에너지를 영화에 담았다. 「데카메론」이 1971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캔터베리 이야기」가 1972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천일야화」가 198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마지막 작품인 「살로, 소돔의 120일」을 완성한 직후인 1975년 11월 오스티아 인근에서 살해당했으나 자세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