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은 매우 ‘창의적’인 실험들을 제안한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돋보기를 가지고 태양빛을 모으는 것을 지금도 많이들 하고 있겠지만 그와 같은 실험을 달빛을 가지고도 해 보아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모든 내용들은, 두 권으로 나뉜 ≪신기관≫의 2권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좀 더 철학적 내용이 담긴 1권보다 2권을 먼저 읽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베이컨은 빛의 실험 혹은 광명의 실험이라는 것에 비중을 더 둔다. 그에 상반되는 개념은 소위 결실의 실험이고 실리적인 실험이다. 후자가 인류의 실생활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면 전자인 빛의 실험은 자연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데 우리가 좀 더 힘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한다. 이런 작동 원리가 파악된다면 자연의 지배를 좀 더 확고하게 할 수 있고 그로부터 인류의 광명과 복지가 찾아오리라는 것이다. 현재 과학계를 보고 있으면, 미국을 중심으로 온 세계가 결실의 실험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아서 가슴 아플 때가 있다. 베이컨이 살아나서 현 상황을 보았다면 장탄식할 일이다.
베이컨의 ≪신기관≫을 ‘자연과학 방법론’으로 읽으면 소위 (인간의 정신을 좀먹고 있는 몇 가지) 우상(idol)은 인간이 자연을 효과적으로 지배하는 데 방해가 되는 정신적인 나약함으로 치환이 된다. 사실 근대 과학이 확립되고 난 뒤 유럽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본격화하고 나침반과 항해술의 등장으로 진정한 의미의 제국주의가 시작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자연을 좀 더 효과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이 함축하는 의미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포함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다. 현재를 사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한정된 자원을 매우 짧은 시간동안 거의 화수분인양 여겨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소모해 왔다는 것이 이 기계론적 세계관의 원치 않은 결과물일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까닭 중 상당 부분은 베이컨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많은 정보를 물려주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에너지로 사용할 자원은 거의 물려주지 못할 상황에 우리 후손들을 밀어 넣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의 위상을 재정립할 새로운 세계관이 절실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베이컨이 주는 울림은 크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