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몽전파사

· 소설Q Libro 5 · 창비 Changbi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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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지 못할 뿐, 꿈이 없는 밤은 없다.

그 꿈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긴다면.

시인 신해욱이 선보이는 첫 소설

신비로운 언어로 그려내는 한편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꿈

 

정제된 언어와 독창적인 시세계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시인 신해욱이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 『해몽전파사』가 출간되었다. 창비에서 새롭게 선보인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다섯번째 책이다. 미스터리하면서도 아름다운 꿈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언어로 옮겨놓은 듯한 환상적인 소설로, 꿈을 교환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비 오는 날 우연히 ‘해몽전파사’에 들르게 된 ‘나’는 주인에게 간밤에 꾸었던 꿈을 팔게 되고, 이를 계기로 해몽전파사에서 열리는 갖가지 꿈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삶을 재료로 삼지만 삶보다 풍부하고 충만한 감각을 선사하는 꿈을 통해, 등장인물들은 더 넓은 지구와 더 깊은 우주를 체험하고 꿈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연대한다. “모든 꿈의 문학이 독자에게 요청하는 바는 결코 ‘나를 해몽하라’가 아니다. ‘너 역시 꿈꾸라’이다”(해설 윤경희)라는 말처럼, 이 책은 독자가 스스로 꿈꾸기를 바라며 건네는 초대장이다.

“거래를 하자.

내가 죽기 전에 천개의 꿈을 모으면 이 가게를 줄게.”

이상하고 아름다운 꿈이 모이는 곳, 해몽전파사

 

비 오는 날 우연히 들른 해몽전파사, 충동적으로 주인인 진주씨에게 보낸 문자, 그리고 어쩐지 진주씨에게 이끌려 간밤의 꿈을 팔게 된 ‘나’. 소설은 꿈속의 한 장면처럼 신비롭게 시작된다. 해몽전파사에서는 꿈을 공유하거나 꿈에 대한 텍스트를 읽는 여러 모임이 열리고 ‘나’는 모임의 일원이 되어 스스로 꿈을 의식하고 기록하기 시작한다. 어느날 진주씨는 자신의 병을 고백하며 자신이 죽기 전에 천개의 꿈을 모아오면 가게를 넘기겠다는 제안을 하고, ‘나’는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꿈을 모으기 시작한다.

해몽전파사에 모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한 축이라면, 또다른 한 축은 바로 꿈 그 자체다. 신해욱은 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낯설면서도 언젠가 만난 듯하고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꿈속 이미지를 감각적인 언어로 생생하게 포착해낸다. 소설에 등장하는 46개의 꿈들은 각각 한편의 짧고 독창적인 동화 같기도 하고, 형체를 알 수 없지만 강렬한 감각을 전달하는 추상화 같기도 하다. 꿈을 소재로 삼은 글이 아닌, 꿈 그 자체를 옮겨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다양한 꿈속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꿈은 돌멩이처럼 가라앉는다. 어떤 꿈은 아스피린처럼 녹는다. 어떤 꿈은 페이스트리처럼 부서지고. 어떤 꿈은 낙엽처럼 쓸려가고. 쓸려갔다가 밀려오는 잔해.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는 조각. 다 녹고 난 다음의 마른 자국. (112면)

 

 

“기다려라. 뿔과 뿔 사이에 통로가 열릴 때까지.”

나의 꿈과 당신의 꿈이 이어지는 세계

 

소설 초반에는 ‘나’의 꿈이 주로 소개되지만, 소설 중반부터는 진주씨, 설아씨, 삼월씨의 꿈이 주로 소개된다. 그러면서 서로의 꿈과 꿈은 겹치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하며 증폭된다. 마치 ‘나’가 설아씨의 꿈속에 있던 것처럼, 처음 보는 삼월씨를 이미 오래전 꿈속에서 만난 적 있던 것처럼. 진주씨의 병과 설아씨 어머니의 병은 피 흐르는 꿈으로 이어지고, 설아씨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나’가 꿈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꿈으로 현현된다. 꿈은 등장인물들을 엮고 이어주며, 서로는 꿈을 통해 위로를 건네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나눈다.

결국 해몽전파사가 바라는 세계는 ‘함께 꿈꾸는 세계’다. 개인의 꿈을 해몽하는 것이 아닌, 꿈을 그저 꿈으로 기록하여 그 자체를 공유하는 세계, 꿈을 통해 타인에게 다가가는 세계. 꿈을 나누며 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독자들은 신해욱이 그리는 ‘꿈의 지표면으로 이루어진 다른 지구’에 접속할 수 있을 것이다.

 

해몽전파사 사람들은 꿈 이야기와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그것을 재료로 꿈꾸기를 지속한다. 무엇인지 모를 욕망을 실현하는 잠 속의 꿈뿐만 아니라 현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꿈.

(…) 우리는 고립되지 않았다. 꿈으로 연대한다. 덧없는 허상이 아니라 염려하고 북돋는 동료애의 꿈으로. (해설, 260-61면)


작가의 말

 

소설이 될 줄은 몰랐다. 지금도 이 책에 박힌 ‘소설’이란 글자가 머쓱하게 다가온다. 막연히 나는 꿈을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었다. 오랫동안 꿈 일기를 써왔고 몇몇 꿈은 내 시의 모티프가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데가 있었다. 꿈을 글감으로 삼는 대신, 꿈을 꿈으로서 존중하며 이쪽 세계로 옮겨와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아직 954개의 꿈을 더 모아야 하니 목표까지는 한참 멀었다. 그러니까 이 책에 담긴 건 고작 해몽전파사의 프롤로그일지도 모른다. 여하간, 가게의 문을 열고 말았다. 나는 내가 쓰지 못한 이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앞으로 모일 954개의 꿈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또 진주씨의 건강과 해몽전파사의 밝은 미래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진다. 이 책과 인연을 맺는 분들도 진주씨의 쾌유를, 설아씨와 삼월씨와 내가 천개의 꿈을 다 모으는 날을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꿈을 꾸었다.

 

못을 뽑았다. 못함의 못을. 꿈이 아닐 수 없는 꿈으로부터.

 

2020년 2월

신해욱

 

 

책 속에서

 

하늘은 쾌청하다. 바람이 분다. 바람에 서늘함이 묻어 있다. 집은 비에 잠길 것이다. 수박을 나눠 먹으며 마당의 시원한 빗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짝에 팽팽하게 발린 창호지는 오래전에 찢어질 것이다. 살아보지 못한 우리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목이 멘다. 깡통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40면)

 

누구나 꿈을 꾼다. 기억하지 못할 뿐 꿈이 없는 밤은 없다. 그 꿈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긴다면. 날짜와 시간을 적어서. 위도와 경도를 붙여서. 꿈의 지표면으로 이루어진 다른 지구. 꿈의 대륙. 꿈의 절해고도. 꿈의 등고선. 꿈의 해안선. (49면)

 

깨진 머리와 흥건한 피의 양이 상세히 입력되었고 누가 육중한 돌덩이를 들어 올렸지. 너의 머리를 겨냥했지. 깨진 머리에서 삶의 내력이 쏟아졌지. (101면)

 

그래도 꿈은 삶을 재료로 삼는 것이 아닌가. 내 삶과 무관한 이 충만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173면)

 

어림해보니 그때 엄마는 지금의 저보다 어렸던 것 같아요. 어린 엄마의 머릴 저도 쓰다듬어주면 좋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늙고 초췌해지셨네요. 헐렁한 환자복을 입고 머리맡 폴대엔 주사액 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요. 주무시면서 미간을 자꾸 찌푸려요. 무슨 꿈을 꾸고 계신 걸까요. (187면)

 

뒤를 본다. 바람이 분다. 페이지가 넘어간다. 알라바마. 알리바바.

일요일에 연락할게. 알리바바. 알리바바.

일요일만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페이지가 바람에 날려 무수히 넘어간다. (247면)

 

 

추천사

 

꿈의 말은 다른 꿈의 말을 불러낸다. 꿈꾸는 친구에게 다른 꿈꾸는 친구가 생긴다. 세계에 꿈꾸는 사람들의 작은 우정 공동체가 조직된다. 그것이 바로 해몽전파사와 그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해몽전파사』의 문학적 꿈이기도 하다. 『해몽전파사』를 비롯하여 모든 꿈의 문학이 독자에게 요청하는 바는 결코 ‘나를 해몽하라’가 아니다. ‘너 역시 꿈꾸라’이다.

윤경희 문학평론가



Changbi Publishers

Acerca del autor

신해욱 申骸燠

 

199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무족영원』, 산문집 『비성년열전』 『일인용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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