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가 경제학: 시대의 흐름을 바꾼 혁신가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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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는 다시 혁신가 기다린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돌파하는 경제학의 새로운 도전

『혁신가 경제학: 시대의 흐름을 바꾼 혁신가 열전』(이하 『혁신가 경제학』)은 우리 사회의 대안적 경제모델을 연구해온 이일영 교수(한신대 글로벌비즈니스학부)가 학교와 생활현장을 넘나들며 ‘혁신’을 주제로 한 강의 내용에 토대를 둔 책이다. 여기서 저자는 ‘개인기’가 아닌 ‘조직력’으로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돌파할 것을 제안한다. 조직력은 집단주의적 단합 따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조직할 줄 아는 능력, 즉 흩어져 있는 아이디어나 사람 들을 결합하고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저자는 주류경제학과 맑스주의를 넘어서는 이론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을 끌어와, 새로운 결합과 연결로서 ‘혁신’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주체로서 ‘혁신가’를 제시한다.

최근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청년층을 일컫는 3포세대라는 신조어가 5포세대, 7포세대로 진화하다 급기야 N포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청년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생활이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 도대체 뭘, 어떻게 바꿔야 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한 시대의 흐름을 바꾼 6가지 흥미로운 열전(列傳)을 들려주며 지금 이 자리에서 혁신이 어떻게 가능할지 타진한다. 개인은 힘이 없고, 정부는 우왕좌왕하는 오늘에도 혁신을 통해 함께 살 길을 모색할 수 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역사가 말하는 혁신가, 결합하고 연결하는 사람

‘혁신’은 경영학에서 자주 이야기되지만 경제학에서는 중요한 취급을 받지 못했다. 혁신을 처음으로 경제학 테두리 안에 들여온 이는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 1883~1950)다. 그는 혁신을 ‘창조적 파괴’ 행위를 통한 ‘새로운 결합’(new combination)으로 정의하고, 자본주의 체제 내 기업가(entrepreneur)에게서 새로운 결합을 행하는 혁신가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를테면 신제품 발명, 새로운 생산방법 도입, 새로운 시장 개척, 새로운 원료공급처 확보, 새로운 산업조직 구성 등이다. ‘새로운 결합’에 주목한다면 슘페터의 혁신가 개념은 자본주의 바깥으로도 확장해볼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송대 성리학자인 주자(朱子)는 8~12세기에 나타난 경제혁명에 부응하는 사상체계를 구축했다. 당시 농업기술 발달로 농업 생산량이 늘면서 시장이 확대되고, 자연히 상업과 도시가 발달했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감당하려면 중앙정부가 농민들을 엄격히 통제하기보다 지방 차원에서 농민들을 관리하고 농민들에게 좀더 자율권을 주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중앙집권적 전제정부는 경제발전으로 말미암아 분권화의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주자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실크로드와 해상로를 통해 유입된 서유럽·인도 등의 신문물에 영감을 받으며, 전에 없던 방식으로 존재론(자연학)과 도덕론(윤리학)의 종합을 시도한다. 그는 하늘의 본성이 개개 인간의 마음 속에 인의예지 같은 가치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하여, 황제만이 하늘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전제주의적 관념을 파괴했다. 경제·정치·사회상에 나타난 변화들을 간파하고 새로운 사상체계로 결합한 주자는 슘페터가 말한 혁신가에 잘 들어맞는 인물이다.

혁신과 관련해 이 책에서 주목하는 또다른 개념은 ‘연결’ 혹은 ‘네트워크’(network)다. 경제학자보다는 사회학자들이 주로 관심을 보인 ‘네트워크’는 시장과도, 기업 같은 위계조직과도 구분되는 조직형태다. 네트워크는 수평적인 관계를 기초로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 선호되는 지점들이 생겨 네트워크 안에서도 불평등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런 선호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거기서 이탈하는 힘이 작용해 다시 일정한 수평성을 유지하게 된다. 한국사회의 경우 국가주도 경제성장의 관습이 남아 있어 수직적·위계적 성격이 강하다. 정부의 공권력 남용과 대기업의 ‘갑질’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를 수평적·분권적인 네트워크 형태로 극복할 것을 제안한다.

그 실마리를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를 이룬 장보고(張保皐)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고대국가 신라는 중앙과 지방,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뚜렷한 위계사회였다. 834년 흥덕왕이 반포한 교서에는 “사람은 상하가 있고, 지위에 존비가 있으며, 명칭과 법식이 같지 않고 의복도 다르다”고 되어 있다. 이런 질서를 뒷받침하는 것이 골품제였다. 지방민이자 하층민이자, 중국에서 활동한 이방인이었던 장보고는 당연히 골품제 아래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골품제에 편입되지도 않았다. 대신에 그는 당나라와 일본에 흩어져 있던 신라인들, 나라를 잃고 떠도는 고구려와 백제 출신 유민들을 잇는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네트워크는 국가의 간섭을 최대한 덜 받으면서 무역과 군사·행정·외교 업무까지 수행했다. 문화와 사상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장보고가 신라에도, 당나라에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은 국외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인의 힘으로 도저히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사회의 두터운 벽을 자기와 같은 이방인—재외국민들—을 조직함으로써 돌파한 것이다.

어두운 시대를 돌파하기 위한 경제학 프로젝트, 혁신가 경제학

『혁신가 경제학』은 혁신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다룬 제2부, 그리고 혁신을 이룬 대표적 혁신가 사례를 다룬 제3·4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혁신의 이론은 슘페터부터 피터 드러커, 칼 폴라니, 로널드 코즈, 네트워크 사회학까지 다양하게 참조하는데, 그렇게 해서 도달하는 지점은 제도와 조직의 혁신, 즉 씨스템의 혁신이다.

저자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 수강생들, 활동가들, 그리고 집에 있는 둘째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혁신가인지” 끊임없이 묻는다. 각자 관심 분야나 배경지식에 따라 다른 답변을 들려주는데, 슘페터식으로 ‘기업가’ 내지는 ‘창업자’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혁신은 기업혁신, 기술혁신, 사회혁신 등으로 세분화되기도 하며, 특히 유럽 전통에서 기업혁신이나 기술혁신을 사회혁신과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스티브 잡스 같은 기업·기술혁신가의 이미지, 그것도 탁월한 어느 개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저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19세기 산업혁명은 흔히 제임스 와트라는 비범한 인물이 증기기관을 발명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증기기관은 와트 한 사람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결합된 집합적 발명의 산물이라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증기기관 발명이라는 기술혁신은 발명 아이디어를 재산권으로 보장하는 제도혁신이 있었기에, 이후 발명품과 발명가가 줄을 이어 산업혁명을 추동하고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사회혁신은 기업혁신이나 기술혁신과 배치되지 않으며, 사회혁신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어느 한 사람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조차 기저에 수많은 조직적 움직임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혁신가 경제학’은 바로 그런 움직임을 예민하게 포착해 스스로 혁신가가 되려는 이들을 독려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메시지는 바로 이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경제학자가 경험한 한국사회,

지금이 바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는 대학 시절 운동권 학생이었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운동권 출신이 노동운동 현장이 아닌 학계로 진로를 튼 것은 당시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런데 이 무렵 동구권의 현실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졌다. ‘자본주의의 몰락과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라는 진보 학계의 공식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의 영속을 믿는 보수 진영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몰락을 단언해온 진보 진영 역시 이념에 갇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 둔감했음이 드러났다. 저자는 “어제 예측한 일이 왜 오늘 일어나지 않았는지 내일쯤 돼서야 알아내는 자들”이라는, 경제학자를 향한 비아냥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롭지 않다고 느꼈다. 농업경제를 공부하던 그는 사회주의 집단농업체제가 자본주의 소농체제보다 농민들에게 결코 나은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1987년부터 1992년까지 한국사회는 정치·경제적으로 건국과 분단 시기에 맞먹는 전환을 겪었다. 6월항쟁과 헌법개정, 글로벌화와 정보화가 진행되며 사회의 체질이 급격하게 변했고, 이때 형성된 이른바 ‘87년 체제’가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민주화나 산업 고도화에서 비롯한 장점이 점차 퇴색되고 불공정·불평등 구조 같은 나쁜 부산물이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것이 세월호 참사와 청년실업 문제 같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갖가지 위기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고 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면 전혀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국가 모두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생존이 걸린 중대한 국면에 들어설 때가 있다. 이때가 ‘혁신’ 이 필요해지는 시기다.”(「책머리에」 중에서)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한국사회에 절실하게 혁신이 필요한 순간이 도래한 것 아닐까?

이제 경제학자의 역할은 현 체제의 몰락을 예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체제가 몰락한다고 해서 지금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은 매순간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고 있다. 물론 그것은 아직 방향성을 갖추지 않은 움직임이다. 경제학자는 그 움직임을 예민하게 포착해 움직임이 어디로 향하면 좋을지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그 움직임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 잠재적 혁신가의 몫이다.

Changbi Publishers

About the author

이일영 (李日榮) Lee, Il-young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1980년대 중국의 농업개혁’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책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한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창작과비평』 『동향과 전망』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대안적 지역경제 모델로 ‘한반도경제론’을 제기하고 연구하는 한편, 청년과 함께하는 ‘사회혁신’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경제』 『중국 농업, 동아시아로의 압축』 『북한 농업개혁의 현황과 전망』 『중국의 농촌개혁과 경제발전』 등이 있다.

Born in 1963, Lee Il-young studied economics (BA, MA, and Ph D)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 professor of Chinese studies at Hanshin University, he has authored China’s Agrarian Reform and Economic Development and The Korean Economy’s Development Strategy in an Age of Northeast Asia and co-authored East Asia in an Age of Open-Door Policy: Industry and Policy and China on the Road to the WTO: Change and Continu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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