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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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사상적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전·중·후기의 대표 작품 세 편. 자신의 딸이 화마에 휩싸인 순간에도 그림에만 몰두하는 지독한 열정의 화가 요시히데와, 파업을 일으킬 경우 모두 죽여 그 고기를 먹어버리는 ‘갓파’ 세상의 모습 등을 통해, 그의 뛰어난 예술적 상상력과 패러디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인 문학상의 이름으로 회자되며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옥변(地獄變)>(1918)은 전기의 대표작이다. 이 시기는 일본의 고전에서 제재를 얻어와 패러디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 작품도 일본 중세(13세기 초) 설화집 ≪우지슈이모노가타리(宇治拾遺物語)≫에서 제재를 따왔지만, 한편으로 보면 젊은 아쿠타가와 자신의 예술가선언이라 할 수도 있다. 예술과 인생과 정치권력의 삼자 대립 구도를 설정하여, 예술적 승리를 구가하는 예술가의 장엄한 삶을 재창조하고 있다. 자연주의 전성기에 데뷔하여 기성 비평가에게 적지 않게 비판을 받기도 했던 작가의 초기 예술관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예술의 승리인가 패배인가의 문제, 딸과 영주와 아버지의 욕망의 삼각구도에 대한 정의, 그리고 딸을 범한 자가 영주인가 아버지인가에 대한 답도 주어져 있다. 아쿠타가와는 자살 직전의 자전적 단편 <하구루마(?車, 톱니바퀴)>에서 주인공 요시히데(良秀)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삶을 중첩시키고 있다.

<무도회(舞踏會)>(1920)는 중기의 대표작으로 두 가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예술과 생활의 이항대립적 구도를 지양하고자 하는 진지한 고민이 결말 부분의 찰나적 폭죽에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도회장과 아키코(明子)라는 인물은 다름 아닌 서구 근대를 그대로 모방하는 일본 근대를 희화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아쿠타가와가 <지옥변>과 같은 예술지상주의적 태도를 서서히 지양하는 과도기적 작품 중 하나이자, 중기에 집중적으로 보이는 개화물(開化物)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프랑스 장교는 실존하는 인물로, 그의 일본 체험을 통해 나온 문장들을 참고하여 완성한 귀여운 단편 중 하나다.

<갓파(河童)>(1927)는 작가 스스로가 ‘걸리버풍 이야기’라고 고백하고 있듯이, 여러 서구 문학의 수용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걸리버 유의 작품들이 가지는 풍자성을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근대 지식인으로서의 고립적 삶과 죽음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자의식의 도식을 상징적으로 묘출한, 자살 직전의 유서 같은 작품이다. 근대 지식인들의 예술과 인생을 일본 고유의 민속학적 모티프인 갓파(河童)에 빗대어 그리고 있다. 수직적으로 하강하는 지하세계를 이루고 있는 갓파의 나라는 근대 지식인의 인식 세계라 할 수 있으며, 그 지하세계를 모르는 표층적 인간 나라는 다름 아닌 상식을 바로미터로 하여 살아가는 일상적 세계의 상징인 것이다. 갓파를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에 따라 광인과 동물의 대립성이 설정되는 것은, 중국 근대소설 루쉰(魯迅)의 <광인일기(狂人日記)>와 유사한 면이 있다. 갓파를 보지 못하는 자가 동물도 아니거니와 갓파를 본 자가 광인도 아니라는 이중 부정에서 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적인 니힐리즘으로 맺고 있다는 점에서는 상이하다. 이 작품은 인물들의 이름이나 여러 설정들을 퀴즈를 풀듯이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번역의 원전으로 1987년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芥川龍之介全集)≫을 사용했다.

About the author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1892년 도쿄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갑작스런 정신질환으로 외가에서 자랐다. 문화적인 가풍이 남달랐던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폭넓은 독서를 체험했던 그는 도쿄 대학 영문학과까지 별 어려움 없이 진학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14년, 고등학교 동기였던 구메 마사오, 기쿠치 칸 등과 함께 동인지 《신사조》를 간행하고 처녀작 〈노년〉을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915년 첫 단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작품성을 보여준 〈라쇼몬〉을 발표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당대 최고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에 들어가 문학 수업을 받는 동안, 그에게 작가로서의 가능성과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1916년 《신소설》에 발표한 단편 〈참마 죽〉으로 문단에 이름을 알렸으며, 데뷔와 동시에 신진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해군기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교직에 있는 동안에도 〈투도〉 〈지옥변〉 〈거미줄〉 〈악마〉 등의 단편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1919년 결혼과 함께 교직을 그만두고 집필에 전념한 그는 1927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10여 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무려 150편에 이르는 단편과 거의 동일한 양의 동화, 수필, 평론, 기행문 등을 집필했다.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일본 단편문학의 아버지로, 나쓰메 소세키, 모리 오가이 등과 함께 일본이 낳은 최고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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