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괴테 노년의 서정시가 최고 수준의 소박한 서정적 텍스트로 여겨져 왔는데, 이 텍스트들이 ≪서동시집≫에서 분명히 보여 주는 정신적 요소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성(聖) 네포무크 축일 전날 저녁>에서 보여 주는 예술적인 수수함이나, <중국과 독일의 계절과 하루>는 20세기 초에 독일 고전주의를 추종했던 로베르트 무질,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같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소박하면서도 객관적인 모티프나 이미지는 과감한 언어 사용과 결합해 재치 있고 명랑함으로 변용된다. 반면에 열정의 고통스러운 울림도 빠지지 않는데, <바람에 울리는 하프들>에서 <비가>에 이르기까지 그 울림은 상승한다. <비가>에서는 자연의 관찰을 통해서도 출구가 막혀 있음을 한탄한다. 또한 시 자체가 열정의 고통을 달래는 데에 아무런 소용도 없음으로 귀결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사랑과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의 절정은 두 편의 “도른부르크 시”(1828)인데, 달과 해라는 반대 이미지가 이 열정의 고통에 대답하고 있다. 괴테 노년의 시 <하나이자 모든 것>과 <유언>은 교훈적인 내용을, <엄숙한 납골당에서…>는 개인적으로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하워드를 명예롭게 기억하며>는 자연의 현상을 직접 이미지로 옮기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시들을 객관적으로 보기보다 괴테 자신의 주관적인 사실로 읽고 그 의미를 해독해 내려는 경향이 있다. 괴테 노년의 시 가운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파리아 3부작>(1823)은 앞에서 소개한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는다. 발라드풍의 열정과 매우 기교적인 어법으로 이 3부작은 독특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는데, 주제 또한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다.
격언시(Spruchdichtung)
노년 시기에 쓴 600편에 달하는 격언시 가운데 3분의 2 정도를 괴테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출판했는데, 일단 자신이 발행하던 잡지 ≪예술과 고대≫에 세 부분으로 나누어 발표했고, 1827년에 출간된 자신의 전집에 나머지 격언시를 또 세 부분으로 나누어 실었다. 이 시들은 괴테가 죽은 후 ≪온순한 크세니엔(Zahme Xenien)≫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제목은 한편으로는 괴테가 1796년에 실러와 함께 쓴 가시 돋친 ‘손님에게 주는 선물(크세니엔)’과 연결되고(≪괴테 시선 4 크세니엔≫ 참조), 다른 한편으로는 노년의 온화함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지만 여기에 담긴 격언은 악의 없는 순진한 시들은 아니다. 반대로 이 시들이 비록 개별 인물이나 적대적인 사람을 직접적으로 겨냥하지는 않지만,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현재의 폐해를 공격할 때는 단호하고 엄하다.
괴테는 1807년부터 집중적으로 각종 격언집과 옛날 독일 격언집을 읽었고, 1815년에 발간된 자신의 전집 시집 편에 서정시 형태의 격언들을 모아 수록했다. 또한 노년의 소설인 ≪친화력≫(1809)과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에는 잠언이나 격언을 시사하는 구절을 많이 담고 있다. 괴테가 노년에 쓴 편지나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산문 형태나 운문 형태의 수많은 격언이 나온다. 냉소적인 태도와 유머 사이를 넘나들며 격언시는 침묵으로 되돌아가 성찰하는 노인의 모습도 보여 준다.
인물시(Gedichte an Personen)와 기회시(Gelegenheitsgedichte)
괴테의 노년 시기에 어떤 계기로 쓰게 된 기회시와 특정 인물을 위해 쓴 인물시 일부분은 1827년에 출판된 괴테의 전집에 수록되었다. 이 시들의 공통점은 이전 시기에 쓴 기회시나 인물시와 비교했을 때, 가끔 언어 표현과 개별 사항을 너무 과감하게 일반적인 사항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상징적 의미로 확장하는 데 있다. 마치 “무(無)에서 최고의 보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성찰하는 시들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전체적 윤곽을 나타내기 위해 그 시를 쓰게 된 계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시들도 있다. <바이런 경에게>는 천재 시인의 인품에 대한 암시와 찬탄의 시로, “마음속 깊이 자신과 싸웠던” 사람에 대한 경고와 격려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시대를 비판하는 괴테 자신의 고백이기도 하다. 노년의 시에서 가장 언어 기교가 뛰어난 시는 1820년 2월 3일에 쓴 <마리아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공주님께>다. 개인적인 일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묘사하는 시는 1822/1823년에 마리엔바트에서 쓴 울리케 폰 레베초에게 보내는 시들로, <비가>의 전주곡이자 내부와 외부에서 바라보는 “놀이”로서 가까이 있을 때와 멀리 떨어져 있을 때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렇게 보면 노년에 쓴 기회시나 인물시는 비록 교훈적 내용과 세계관을 담은 때도 있지만, 각각의 경우에 맞춘 후기 시의 정수로 볼 수 있다. 즉, 직접적인 계기로 쓰기는 했지만, 이 계기를 괴테는 ‘역사적인 개별적 경우’로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재치 있게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의미로 나타낸다. 괴테는 이런 의례적인 기회를 현실로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오히려 그런 일을 자신이 활기차게 시를 쓰는 계기로 삼았다. 그러면서 각 기회는 필요하다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역사적으로 성찰하는 동인이 되었다.
괴테 노년 문체의 특성
괴테가 노년에 쓴 텍스트는 수수께끼처럼 이해하기 힘든 어떤 사실을 암시하는 듯한 특성을 띠고 있다. 이것은 괴테가 의도했던 “비가측성(非可測性, Inkommensurabilit?t : 같은 측도로 측정되지 않는 비교 불가능성)”에 기인한다. 괴테는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 작품이 같은 측도로 측정될 수 없으면 없을수록 그리고 정상적인 이해력으로 파악하기 힘들수록 더 낫다네”(1827. 5. 6). 그러나 최고로 응축된 언어 사이에서 가끔은 소박한 일상 언어가 나타나기도 한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괴테 노년의 문체는 다른 품사의 단어를 연결해 만든 신조어를 선호하는 경향이다. <성담>과 <하워드를 명예롭게 기억하며>에서는 심지어 세 단어를 묶어서 한 단어를 만들기도 한다. 비슷한 경우로 형용사를 중첩하는 것도 있다. 이전처럼 엄격한 구문이나 문장 대신에 느슨하지만 서로 뜻이 통하는 단어를 배치함으로써 의미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기능이 강화된다. 연이나 시 전체가 완성된 문장 구조를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단어들이 어색하게 배열되어 문법적으로는 “열린” 형태를 취하게 되는 이러한 문체의 특징들은 괴테 노년 시의 상투적 어법이 되어 간결한 함축적 의미의 격언이나 잠언과 같이 언어를 응축해서 간결하게 표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런 시는 단어에 의해 결정되고 구분되거나 설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대상물을 상상 속에 불러내기 위한 암시만을 주게 된다.
지식을만드는지식 ≪괴테 시선 VII≫에는 괴테의 격언시 190편, 인물시 37편, 세계관을 담은 시들 20편, 만년의 서정시 24편, 잡지 ≪카오스≫에 실린 시들 22편을 수록했다.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지낸 임우영 교수는 정확한 번역과 함께 당시 시대 상황과 작품의 배경, 인간관계, 작품이 풍자하는 대상 등을 자세한 해설과 주석으로 제시해 작품을 좀 더 정확하고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