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의 시에서는 윤동주처럼 자기 고뇌의 흔적이 깊이 파여 있다(‘독백’, ‘방문 거절’, ‘시인에게’). 또한 이육사처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오늘을 이겨내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청량 세계’, ‘선구자의 노래’). 부분적으로는 노동자 농민에 대한 지지와 연민이 담겨 있지만(‘가장 비통한 기욕’, ‘조소’), 기실 그의 정신은 낭만적이다. 남미에 체 게바라가 있다면, 조선 반도에는 이상화가 있다고 해야 옳을 일이다. 그는 작품만으로 독립과 자유와 사랑을 노래하지는 않았다. 그는 체 게바라나 이육사처럼 실천한 사람이다. 구식교육을 통한 기개와 의지를 배우고, 신식교육을 통해 낭만을 꿈꾸었으나, 일본 체류시절 관동 대지진 속에서 일본인들의 조선인 학살을 목격하며 그의 낭만적 서정성은 신민지 현실에 대한 자각과 자기 정체성의 재확립이라는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면서 그를 가두고 있는 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된다. 그래서 그는 삼일운동에 행동으로 참여했고, 중국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는 형을 만나기도 했다.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 활동도 이러한 일련의 행동에 닿아 있다. 때로는 상징적으로, 때로는 직설적으로 내뱉는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식민지 현실을 저항하며, 온몸으로 어둠을 밀어내려했던 시인 이상화, 행동하는 저항시인 이상화. 세월은 가도, 작품 하나하나 속에서 그의 이러한 정신이 뜨거운 숨을 내쉬고 있다. 본 책은 그의 작품들을 시기와 주제별로 분류하여 주해와 함께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