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시요일’ 30만 독자가 사랑한 박소란의 신작시집
닫힌 문을 두드리며 건네는 다정한 인사
2009년 등단 이후 자기만의 시세계를 지키며 사회의 보편적인 아픔을 서정적 어조로 그려온 박소란 시인의 두번째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이 출간되었다. 시인은 “사회적 약자와 시대의 아픔을 개성적인 어법으로 끌어안았다”는 호평을 받은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창비 2015)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주목을 받았다. 시집 독자들은 물론 시 전문 애플리케이션 ‘시요일’ 이용자들로부터도 특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박소란 시인은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더욱 섬세해진 감수성으로 삶의 순간순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체념의 힘을 빌려 생을 돌보는”(이영광, 추천사) 간절한 마음으로 닫힌 문을 두드리는 온기 있는 말들이 일상의 슬픔을 달래며 오래도록 가슴속에 여울진다.
시인은 우리 주변의 슬픔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곧 시인 자신의 슬픔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체념이 더 익숙해진 삶의 불행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렇다고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좋아하고 또 그리워하는지”(「비닐봉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소중하다고 믿기에 “죽은 몸을 일으켜 세”(「쓰러진 의자」)우고, “나는 걷고 있고 그러므로 살고 있”(「천변 풍경」)음을 거듭 확인한다. 그리고 “문 저편의 그럴듯한 삶을 시작해”(「손잡이」)보기로 한다. 빈약한 삶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아스팔트 위를 걷고 여전히 살아 있다”(「이 단단한」).
시인은 ‘한 사람의 닫힌 문’이라는 제목을 통해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어떤 사람을 상상하게 만든다. 닫힌 문으로 인해 문 저편이 당장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문 저편에 있는 무언가가 온전한 것일 수 있다. 온전한 무언가가 문 저편에 있다고 생각하면 문 이편의 삶이 조금은 견딜 만해진다고 시인은 말한다. 해서 시인은 ‘모르는 사이’인 누군가에게도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심야 식당」) 궁금해하고,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모르는 사이」)라고 말하는 이 평범한 문장 앞에서 우리는 울컥, 멈춰 서게 된다. “사람을 원치 않아요 진심입니다”(「깡통」)라고 짐짓 말하지만 시인은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아름다운 시를 쓴다”(「이 단단한」).
울음으로 가득 찼던 첫 시집에서 ‘노래는 구원도 영원도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듯이 시가 슬픔을 노래한다고 해서 절망뿐인 현실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슬픔으로 가득 차올라 먹먹해진 목청을 가다듬고 “침묵의 안간힘으로”(「울지 않는 입술」) 슬픔의 노래를 부른다. 삶에 지친 등을 가만가만 쓸어주는 손길과, 비루한 생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애틋한 마음으로 들려주는 시인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기에 이제 우리는 어떤 절망에도, “어떤 슬픔에도 끄떡하지 않는다”(「전기장판」). 이 위로의 시편들은 닫힌 문을 쾅쾅 두드릴 때 들리는 묵직한 울림과 함께 독자들 곁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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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심야 식당」 중에서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모르는 사이」 중에서
노래하지 않는 입술, 나를 위해
울지 않는 입술
(…)
내 것이 아닌 입술
여느 때와 같이
침묵의 안간힘으로, 나는, 견딜 수 있다
―「울지 않는 입술」 중에서
불쑥,이라는 말이 좋아
불쑥 오는 버스에 불쑥 올라 불쑥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
그런 일이 좋아
나는 그에게 사랑을 고백할 텐데 불쑥 우리는 사랑할 텐데
―「불쑥」 중에서
걷다보니 혼자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
여기는 천국일까
지옥일까
전화를 걸어 묻고 싶다
있나요?
살아 있나요?
―「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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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가난과 마음 가난이 자아내는 허기는 이 시인의 인생 표정인데 여기에 궁기와 한탄이 없다는 것이 전부터 놀라웠다. 허기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는 배고픔이다. 이 시집은 그 절실한 배고픔과 고독을 전보다 더 따뜻한 어둠에서 더 막막히 신문해 얻은 진술서이다. 따뜻하다는 건 함께한다는 것이고 막막하다는 건 맞선다는 뜻이다. 그는 여전히 길과 집과 꿈속에서 밥과 사랑과 공포를 마주한다. 무대는 더 외로워졌고 시인은 더 강해졌다. 그의 상대들이 세졌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가 잃은 것들이 떠날 줄 모르고 쉼 없이 되돌아오는 내면의 사태와 관계가 깊다. 방법적 착란의 기미가 비치는 여러 시편들에서 그는 이별 없는 이별의 고통에 기꺼이 시달린다. 죽음을 보내면서 또 불러들이고, 죽은 이에게 사로잡히거나 죽은 이가 되어 말하는 장면들. 말을 침처럼 흘리며 걸어야 하는 이 증세가 힘에 부쳐 그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도 살 수도 없는 사람이라 여기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이”인 누군가에게도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방심의 순간이 있어 “닫힌 문” 안에 불현듯 온기가 돈다. 사랑의 ‘불을 끄려면 불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는 애틋한 역설, 슬픔이 “어떤 슬픔에도 끄떡하지 않는다”는 힘차고 서글픈 반어는 다 사랑하는 싸움의 고된 결실이 아닐지. 시가 죽음에 손을 내미는 건 체념의 힘을 빌려 바로 생을 돌보기 위해서다. 그 무대에 그가 그릴 다른 윤리의 얼굴을 기대하게 된다. 곤한 인생파 시인이 더 곤한 투시파 시인이 되어가나보다.
이영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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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아름답다’를 대신할 말이 없었다.
‘울음’이나 ‘웃음’과 같이,
‘나’는 지우려 해도 자꾸만 되살아났다.
스스로도 감지하지 못한 사이 거듭 ‘문’을 열었고
그 사실을 끝내 들키고 싶었다.
문을 열면, 닫힌 문을 열면
거기 누군가 ‘있다’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한다.
2019년 1월
박소란
Changbi Publishers
박소란 朴笑蘭
2009년 『문학수첩』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이 있고, 신동엽문학상과 내일의한국작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