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길. 사내는 모두 같다 그리 단정하며 살아온 그녀였다. 어떤 경우든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 뜨거운 심장까지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사내라고. 뼈저리게 경험으로 배운 일이기에 자신의 생각엔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을 거라 그리 생각하며 살아온 그녀였다. 가까이 해서도, 다가서도 안 되는 그런 존재가 바로 사내라고. 그런 마음으로 지난 팔 년을 철벽을 유지한 채 살아왔는데……. 자꾸만 시선이 간다. 자꾸만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자신의 경계선 안으로 들어서려는 그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이 쳐놓은 경계선 안으로 들어오게 해선 안 된다고. 두 번 다신 같은 실순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흔들리는 이 마음은 뭔지……. 문차민 이 여자 자꾸만 시선이 간다. 전직 HS라는 사실도 그랬지만, 우연찮게 본 그녀의 몸 가득 새겨진 상처들에 가슴이 시린 건 왜인지. 군인으로 살아온 삶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리 치부하기엔 유난히 많은 상처들에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았을 그녀를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 아래 알 수 없는 뜨거움도 함께 요동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알고 싶어졌다. 저 차가움 뒤에 어떤 뜨거움이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하고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는 그녀의 철벽을 깨고 싶어졌다. 깨져버린 그녀는 어떤 모습일지 어떤 표정을 지을 지……. [본문 내용 중에서] “손 줘 봐요.” “싫습니다.” “그럼 더 부끄러운 일이 발생할 텐데……. 훗, 나 미친놈인 거 당신이 잘 알 거라 생각하는데요?” “하!” “어서요.” “휴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독안에 든 쥐처럼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던 한길은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아랫입술을 핥아대는 차민의 모습에 흠칫 놀라 어깨를 살짝 떨고 말았다. “이 자리에서 당신을 움켜잡고 키스할 수도 있어요, 나.” “무, 무슨…….” “큭큭, 나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또라이거든요. 그래서 2년 전에 있었던 곳에서도 개또라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고.” 자신이 겪은 그라면 그 별명이 딱 일거란 생각이 들자, 주위를 빠르게 살피며 테이블 위로 손을 올려놓았다. “왜요?” 한길의 손을 움켜잡은 차민이 손을 휙 뒤집어 손바닥에 부드러운 입술을 갖다 대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한눈에 반한다는 거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들의 경험담을 들을 때면 속으로 참 많이 비웃었거든요. 세상에 한눈에 반하는 여자가 어디 있냐고. 그런데 있네요. 2년 전 그때와 다시 만난 지금. 역시나 이 심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당신이라는 여자에게만 반응하고 요동치는 이 심장소리가 이렇게 좋은 줄은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난 당신이 어떤 방어막을 치든 상관하지 않아요. 이 심장이 시키는 대로, 이 몸이 반응하는 당신에게 내가 가면 되니까요.” 믿을 수 없는 그의 솔직한 말에 한길의 낯빛이 파랗게 질러갔다. “밀어내고 밀어내요. 당신이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내 전투력은 나날이 상승할 테니까요. 난 험난하고 거친 전투에서 처절하게 살아남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야 이 가슴 속에 들끓는 뜨거운 피가 식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