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걸 못 견디죠

· 창비시선 428. kniha · 창비 Changbi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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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야 아무것도 아니야 사라지는 농담이야”

이제 모든 말들은 수수께끼처럼 흩어진다

 

 

소외된 사람들의 비극적 삶을 특유의 시각과 기법으로 그려내며 호평받아온 이기인 시인의 세번째 시집 『혼자인 걸 못 견디죠』가 출간되었다.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창비 2010) 이후 9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이전의 시세계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색다른 화법을 구사하며 단순한 변모를 뛰어넘는 시적 진화의 경지를 선보인다. 감각과 의미의 상투성을 전복하는 다각적인 시각으로 대상의 이면에 끈질기게 다가가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알쏭달쏭한 언어 실험”(임선기, 추천사)을 보여준다. 낯선 이미지와 정밀한 언어가 어우러진 ‘초주관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간명한 시편들이 인상 깊다.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스무행을 넘지 않는 시가 태반이다. 그만큼 최소한의 정제된 언어로 삶의 장면과 시적 대상의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힘을 쏟았다는 것인데, 특히 한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를 눈여겨봄직하다. 이를테면 “수저를 떨어뜨렸나”(「까마귀」), “천국으로//김칫국물이 떨어졌다”(「점심」), “누가 한뿌리씩//전생의 빛을 뽑아간다”(「파」) 같은 단 한 문장의 시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흙을 만지는 시간」) 하나의 사물 또는 일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매가 얼마나 깊고 매서운지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기인 시의 독자라면 이번 시집을 여는 순간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기존의 언어 체계나 실감 또는 경험 논리로는 단어 하나하나에 촘촘히 새겨넣은 의미를 알아채기가 녹록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시인은 상투적 정서에서 벗어나 낯선 시각으로 세상을 달리 보고자 한다. “발버둥 팔다리를 축축하게 담그는 포도당 용액”(「밑그림 반항」), “흰 수건에서 헤엄쳐 나오는 오리 한마리”(「그렇다면 혼자」) 같은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사물의 뒷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밝혀내려는 시인은, 시는 경험한 것이나 보이는 것만을 규명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현실과 동떨어져 관념의 바다를 유영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아무도 말도 없는 곳에서 당신을 찾아내”(「이루어지도록」)듯 시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기인의 시를 읽기 위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언어 체계를 기반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아직 없는 것’ 혹은 ‘경험하지 않은 것’들의 자리를 더듬으며 다르게 경험해보는 전복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기인의 시에는 전혀 별개의 사물이나 단어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서로에게 수수께끼처럼 흩어진”(「탈지면 눈썹」) 채 나열되어 있음을 종종 보게 된다. “경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난센스”(임선기, 추천사)의 세계에서는 ‘사랑해요’를 “요해랑사로 읽”(「노인과 바다」)는 “엉망이 필요”(「옮긴이」)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시인은 “너는 누구야 아무것도 아니야 사라지는 농담이야”(「앵무」)라는 문장에서 보듯 우리가 ‘말’이라고 믿었던 것은 어쩌면 뜻도 모르면서 중얼거리는 ‘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일깨우기도 한다.

문학평론가 장은정은 해설에서 “이기인의 시들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다면, 삶과 세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앎’은 의문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시인은 “바큇자국을 물어보며 돌아다니는 바퀴”(「모두의 빗소리」)처럼 “아무도 모르는 거리까지 굴러가” 사물의 안쪽에 숨겨진 “모르는 말을 꺼내”(「강아지」)어 우리의 의식 속에 “오랫동안 가르치지 않은 말”(「앵무」), ‘수수께끼 같은 언어’를 쏟아넣는다. 이로써 우리는 “감각과 의미의 의도적 교란을 통해 착란을 보여줌으로써 규범을 폭로하는 난센시스트”이자 “의심받지 않는 감각과 의미가 뿌리 깊은 착란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주의자”(임선기)로서 이기인 시인이 펼쳐 보이는 한국시의 새로운 풍경을 다시 한번 감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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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이기인 시인이 글쓰기라는 문학 실험에 나선 지는 오래됐다. 알쏭달쏭한 언어 실험 속에서 시인은 세상이 얼마나 알쏭달쏭한지 보여줬는데, 그의 언어는 이제 거의 언어 규범의 전면적 해체에서 태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휘와 문장구조, 시라는 담화에 관한 자신의 화법을 구축하며 “메모지에 그려놓은 구불구불한 이름들”이 되고 있다. 그에게 시는 “엄마와 아빠를 붙”이고 “고지서와 전화기를 붙”이고 “조촐한 모임과 먼 산을 붙”이고 “바람과 강물을 붙”이는 편집 과정을 수반하며, “정치적으로”, 다시 말해 규범에 대해, “엉망이 필요”하다는 “요해랑사”이다. 그리하여 “서로에게 수수께끼처럼 흩어진 것들”이 드러나는 것을 그는 “삶이 공개되었다”고 천명한다. 그에게 삶은 “보리밭 위로 나비의 왕진 가방이 뒹”구는 세계이다. 그런 세계는 경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난센스(nonsense)이다. 예문 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색 없는 녹색 관념들이 맹렬히 잠잔다”)의 세계이다. 이기인은 감각과 의미의 의도적 교란을 통해 착란(illusion)을 보여줌으로써 규범을 폭로하는 난센시스트이다. 동시에, 의심받지 않는 감각과 의미가 뿌리 깊은 착란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주의자이다.

임선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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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어떡하지. 낮과 밤을 윽박질러서 나라고 할 수 있는 혼자를 낳았다. 나를 북돋아주기 위해서 꺼내놓은 시가 많다. 시의 질병을 더 앓고 싶었다. 모르는 고독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내 재능은 정성을 다해서 쓰는 것. 곤궁하지만 시의 집에는 불평이 없다. 시에는 아는 단어와 안녕이 없다. 독자도 처음부터 다시 만나고 싶다.

금빛 향로엔 잿빛이 가득하고 오랜만에 그 빛을 쓰러뜨린다. 웅크린 바닥이 보일까. 오래 붙든 빛을 금강에 주고 싶다. 모든 시를 잊은 빛이 그립다.

 

2019년 1월

이기인


[목차]

제1부

모두의 빗소리

두겹의 물방울

흙을 만지는 시간

멍 비누

탈지면 눈썹

밑그림 반항

죽그릇

아역

앵무

사과 정물

뭉친 근육

거지 꽃

씩씩

부유

불타는 의자

 

제2부

노인과 바다

빗질

수제비

그렇다면 혼자

쟁기질

서리태

언제나 깍듯이

구필(口筆)

까마귀

낮의 노인

나이도 나와 비슷한 기도

무말랭이

옮긴이

너에게 일부분의 빛이

가위 풀 금요일 레일

 

제3부

점심

부셔서

당신의 식당

물소

아욱

신중한 리본

구완

기이하게 날아온 빛

저녁의 옷

고무줄 자국

아기 업은 소녀

둔각의 바위

마곡을 어루만지고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고

그림

 

제4부

사려

소지품

어제 개

단역

홍시증

내전

동그라미 달력

설탕물

사과

영양

혼자인 걸 못 견디죠

강아지

아이들 편지

이루어지도록

 

해설|장은정

시인의 말


Changbi Publishers

O autorovi

이기인(李起仁) 시인은 1967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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